미국 서부 '신 골드러시'…'하얀 석유' 리튬 붐
미국 서부 네바다주(州) 클레이튼밸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존 러드(77). 그는 55년 전 오리건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뒤 캐나다 구리광산, 텍사스주 은광산, 애리조나주 철광산, 유타주 우라늄광산을 떠돌았다.

1800년대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시’ 때처럼 광맥을 찾는 러드의 여정이 멈춘 곳은 네바다다. 그가 설립한 광석 채굴회사 지오X플로가 채굴권을 가진 지역에서 리튬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러드는 지난해 채굴지역의 9500에이커(약 3844만5000㎡)를 광물채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퓨어에너지미네랄스에 팔았고, 또 다른 스타트업 리튬X에 조만간 1만에이커(약 4046만8564㎡)를 매각할 예정이다.

최근 수년간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 배터리 소재인 리튬 가격이 급등하면서 네바다주에 리튬광산 개발 ‘붐’이 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리튬X, 퓨어에너지미네랄스를 포함한 최소 여섯 개 스타트업이 네바다주 클레이튼밸리에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리튬 수요, 수년 안에 네 배

리튬은 주로 전기자동차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데다 희소성이 높아 ‘하얀 석유’로도 불린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39%), 그릇 및 유리(30%), 윤활제(8%) 등에 사용된다.

전기차 한 대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양은 28㎏으로 스마트폰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0.02㎏)의 1400배에 달한다. 도이치뱅크는 수년 내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수요가 지금보다 네 배 많은 약 3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리튬시장에서 채굴업체인 미국 앨버말, 미국 FMC, 칠레 SQM이 전체 공급량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전기차 생산 증가로 리튬 공급이 달리면서 광산 스타트업들이 뛰어든 것이다.

리튬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2014년 t당 4000달러였던 리튬 가격은 29일 기준 t당 약 2만달러로 급등했다. 리튬은 금이나 은보다 채굴과 정제 과정이 복잡해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관련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진출하는 이유다.

◆네바다 딛고 남미로 진출

클레이튼밸리에 리튬 채굴 붐이 일자 전기차 배터리 공장도 들어섰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와 일본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파나소닉은 지난해 12월부터 네바다주 리노에 공동으로 약 50억달러를 투자해 전기차·배터리 공장(기가팩토리)을 짓고 있다. 중국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는 2013년 네바다주에 전기버스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 버스에 들어가는 리튬은 일반 전기차의 8배에 이른다.

리튬 채굴 스타트업들은 네바다주에서 기반을 닦은 뒤 세계 리튬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리튬 트라이앵글’로 진출할 계획이다. 리튬 트라이앵글은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를 말한다.

네바다주에서 생산되는 리튬은 불순물인 마그네슘 농도가 낮아 정제 비용이 적게 든다. 바위를 깎아 리튬을 추출해야 하는 호주 중국 광산과 달리 네바다주와 리튬 트라이앵글에선 땅밑에서 광물을 채굴한 뒤 햇볕에 말려 수분을 없애는 방식으로 리튬을 뽑아낸다.

◆트럼프發 수요감소 우려도

일각에서는 리튬 가격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8일 화석연료를 청정에너지로 대체하는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클린파워플랜’을 뒤집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에선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청정에너지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일 리튬 주산지인 아르헨티나가 외국인투자 규제를 풀면서 리튬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거품 원인으로 지목된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이날 외국자본에 대한 금융제재를 풀고 외국 기업에 면세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발표 이후 20개 이상의 외국 광산회사가 아르헨티나 진출 계획을 공개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