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ICT 기업 간 협력을 권장하는 사회여야
현대인의 소통 방식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물을 연결해주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을 장착해 일상생활에 더욱 밀착돼가는 웹 서비스, 모든 것을 담아내는 스마트폰…. 정보통신은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생활 요소다. 그런 정보통신이 국가란 담장을 넘어 세계 모든 것과 연결되면서 국가와 개인의 정보가 누군가가 관리하는 정보통신 계통에 저장되고 이용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더욱 개방돼가는 정보화 시대에 자주적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자국 정보통신 체계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국가나 기업 간 의도적인 정보유출 시도, 그리고 간섭과 침해 의혹에 대한 뉴스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미 세계 각국은 특정 정보통신기업의 독점적 지배력 집중은 물론 정부와 국민의 정보가 각종 서비스와 네트워크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서 비정상적인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국외로 유출돼 축적되는 자국 정보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로 가공된 뒤 되돌아와 사회를 왜곡시킬 경우 피해 당사국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중국은 ‘만리방화벽’이란 국가 감시시스템을 운용하며 자국민의 글로벌 뉴스 접속을 감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국가정보 관리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자국산 네트워크 제품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해외 정보기업의 정보활동을 관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럽연합(EU)은 많은 국가로 구성돼 국가 간 네트워크 차별이 어렵기에 국가별 정보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IBM, 넷플릭스, 시스코 등은 모두 미국에 근거를 두고 세계 정보통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는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보여주는 현란한 모습에 눈길을 빼앗긴 채 그냥 따라가기만 하는 추종자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오로지 그 기업들이 공정하기만을 바라고서 말이다.

우리나라도 정보 전쟁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대응이 정부가 홀로 감당할 사안이 아니기에 국내 정보통신 환경 개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우선 국내 정보통신산업 및 기업 간 협력적 관계 조성이 절실하다. 최근 몇몇 정보통신 기업이 야심찬 해외 진출 전략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개별 기업이 보유한 자금과 능력을 미국 중국 등의 기업과 비교해보면 과연 그런 전략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또 국내 개별 기업이 해외 기업과 협력할 것이란 소식에도 그런 시도가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에 국한된다면 해외 기업에 국내 정보마당을 열어주는 것에 불과할 뿐일 수 있다는 걱정도 든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남의 손에 우리 정보 자주권을 통째로 넘겨줌으로써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국내 산업과 기업들이 협력해 해외 기술과 시장의 높은 장벽에 도전하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로써 형성되는 국내 대기업 간 상호 협력적인 분위기와 환경은 창업, 벤처, 중소·중견기업까지를 상생적 관계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국내 정보통신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법적, 사회적 규제 환경도 바꿔야 한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허명에 사로잡혀, 해외 기업보다는 국내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고 무한 경쟁 상황으로 내몰았던 법적 규제를 현실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보편적 사회공익을 위한 사회적 규제도 글로벌 정보 전쟁 상황에 적절한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내 산업과 기업 간 합병 또는 협력을 담합이라 비난하며 몰아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담합에 관한 엄정한 사후적 판단 조치로 대외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통합과 협력을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국가 간 정보 전쟁은 이미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