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시장 세계 2위인 도시바 반도체사업부의 매각 작업이 본격화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3일 도시바가 인수의향서 접수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대만 정보기술(IT) 매체 디지타임스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TSMC가 도시바 인수를 추진한다고 전했다. 이미 한국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기존 반도체업체들이 인수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전자부품업체 훙하이가 지난 1일 인수 추진을 공식화했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까지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인수 후보는 6~9개에 이른다. 반도체 시장은 물론 세계 IT업계 판도를 흔들 대형 인수합병(M&A)의 막이 올랐다.
◆“낸드 먹겠다” 6~9개사 경쟁

도시바는 3월 말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아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한 뒤 내년 3월 매각을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도시바가 산정한 반도체사업부 가치는 20조원으로 실제 인수하려면 최대 25조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인수 후보자가 각자 장단점을 갖고 있어 인수 결과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 등은 사업 시너지와 시장 점유율 확대 등에서 강점이 있지만 20조원이 넘는 인수대금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등은 인수 후보 중 재무상태가 가장 나쁘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SK하이닉스가 추가 투자를 필요로 하는 도시바 인수에 의욕적으로 뛰어들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있는 칭화유니는 자금 동원 측면에선 유리하다. 신규 반도체 공장 세 곳을 짓는 데만 84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연초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려는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TSMC와 훙하이 등 대만 업체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2015년 훙하이의 샤프 인수에서 보듯 일본 내 여론은 대만 업체에 우호적이다. 지난해 말 13조원의 잉여현금이 있는 훙하이와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낸 TSMC는 인수 여력도 있다. 다만 TSMC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종합반도체업체로 도약하는 만큼 TSMC에 일감을 주는 기존 반도체업체와의 관계가 우려된다. 훙하이는 반도체사업 경험과 노하우가 없다. 2014년 SK C&C 지분 매입을 시작으로 SK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훙하이와 SK하이닉스의 공동 인수 가능성이 부상하는 이유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훙하이는 자금, SK하이닉스는 기술을 제공하며 도시바 인수에 함께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매각 따라 반도체 판도 변화

세계 낸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기존 낸드 생산업체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시장 전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오히려 삼성전자 등 다른 업체에 이득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시장에선 두 개 업체가 합병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이 기존보다 감소하는 사례가 흔하다. 2013년 마이크론은 일본 엘피다를 인수했지만 D램 시장에서 점유율이 기대만큼 크게 늘지 않았다. 양사의 결합으로 나타난 시장 공백은 삼성전자 등이 가져갔다.

반면 낸드 생산이 미미한 중국 및 대만 업체가 인수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온 도시바를 대신해 신규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어서다. 공급이 부족한 낸드 시장이 2~3년 내에 공급 과잉으로 전환되면 업체들은 치킨게임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칭화유니가 인수에 성공하면 5~10년 벌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 반도체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크게 좁혀진다. TSMC는 이미 일부 공정에선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도시바를 인수하면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 낸드플래시

D램 반도체와 달리 전력 공급이 없어도 저장한 내용이 사라지지 않아 ‘비휘발성 메모리’라고도 불린다.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등에 주로 사용된다.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를 쌓아 집적도를 높인 3D 낸드를 내놓으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