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게이브 뉴웰 밸브코퍼레이션 창업 CEO, MS 윈도 개발 13년 '베테랑' 게임 열풍에 꽂혀 홀로서기…단숨에 온라인 게임 유통시장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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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중퇴하고 MS 입사
"하버드서 3년간 배운 것 보다 MS서 석 달 동안 배운 게 많다"
슈팅게임 '둠' 인기에 충격
MS 퇴사하고 게임개발사 차려 1인칭 슈팅게임 1위에 올라
게임유통서비스 '스팀' 출시
불법 복제로 게임 침체기에 시장 뒤흔드는 유료 유통망 출시
지금은 트럼프보다 재산 많아
"하버드서 3년간 배운 것 보다 MS서 석 달 동안 배운 게 많다"
슈팅게임 '둠' 인기에 충격
MS 퇴사하고 게임개발사 차려 1인칭 슈팅게임 1위에 올라
게임유통서비스 '스팀' 출시
불법 복제로 게임 침체기에 시장 뒤흔드는 유료 유통망 출시
지금은 트럼프보다 재산 많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 3.1’을 내놓으면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떠오르던 1993년. 윈도 사용자는 미국 내에서만 2000만명에 달했다. 당시 MS 직원이던 게이브 뉴웰은 시장조사 결과를 본 뒤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윈도 사용자가 많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윈도는 사용자가 두 번째로 많은 소프트웨어에 불과했다. 1위를 차지한 건 1인칭 슈팅(FPS) 게임 시초인 ‘둠’이었다.
뉴웰은 3년 뒤 MS를 퇴사했다. 그리고 게임 개발회사 ‘밸브코퍼레이션’을 세웠다. 설립 때부터 뉴웰 외에 ‘보스’나 ‘중간관리자’가 없는 밸브는 현재 온라인 게임 유통업계를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기업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뉴웰의 재산도 나날이 불어났다. 그의 재산 순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154위)보다 높은 134위다.
MS에서의 3개월 > 하버드대에서의 3년
뉴웰은 1962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중학교 재학 중 당시 빠르게 보급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진로를 바꿨다. 1980년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재학 3년 만에 하버드대에 실망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시애틀에서 MS와 첫 인연을 맺었다. MS는 운영체제 ‘MS-DOS’로 막 이름을 알린 직원 200여명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스티브 발머 부사장 눈에 든 그는 입사 제안을 받자마자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같은 하버드대 중퇴자인 빌 게이츠와도 가까워졌다. 그는 MS의 271번째 직원이 됐다.
뉴웰은 “하버드대에서 3년간 배운 것이 MS에서 3개월간 배운 것만 못했다. 거기(하버드대)선 어떻게 눈 위에서 물구나무 서고 술을 먹는지만 배웠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MS는 MS 오피스도, 윈도도 없었지만 소프트웨어에 관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이후 13년 동안 MS에서 윈도 개발에 참여했다. MS는 뉴웰이 입사한 뒤 ‘윈도 3.1’과 ‘윈도 95’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1위 소프트웨어 회사로 올라섰다.
MS에서 승진이 보장됐던 그의 인생은 1993년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시장조사를 계기로 바뀌었다. 윈도는 최고의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최고는 둠이었다. 둠을 개발한 이드소프트는 텍사스 시골에서 겨우 12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였다. 심지어 소매유통도 하지 않았다. 뉴웰과 함께 충격을 받은 팀 동료 마이크 애브래시는 이드소프트로 이직했다. 흔들리던 그도 마음을 굳혔다.
FPS 게임을 한 단계 끌어올린 첫 작품
뉴웰은 주저하지 않았다. 3년간의 준비 끝에 몇몇 동료 직원과 함께 퇴사해 사비를 털어 1996년 게임개발사 ‘밸브코퍼레이션’을 꾸렸다. 밸브는 1998년 첫 작품인 ‘하프라이프’를 내놨다. ‘레인보우 식스’ ‘언리얼’ 시리즈 등 경쟁 FPS 게임이 출시되던 때였지만 무명의 개발사 밸브가 출시한 하프라이프는 단연 선두를 달렸다.
“달리고, 생각하고, 쏘고, 살아남아라.” 하프라이프만의 광고 문구다. 다른 FPS 게임과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밸브는 이전까지 같은 패턴의 공격만 반복한 컴퓨터 인공지능(AI)을 게이머의 공격에 대응해 엄폐물을 이용하는 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하프라이프 이후 모든 FPS 게임은 키보드 자판의 W, A, S, D키를 이용해 조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밸브는 2004년 후속작인 ‘하프라이프 2’를 출시하며 이드소프트의 ‘둠3’를 누르고 FPS 1인자가 됐다.
보스도, 중간관리자도 없는 게임회사
밸브가 첫 작품부터 FPS 게임 장르를 뒤흔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 회사에는 중간관리자가 없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는다. 밸브 자체도 뉴웰이 지분을 전부 소유한 비상장 개인 회사다. 사장, 임원 몇 명 말고는 전부 개발자다. 300여명이 일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밸브에서는 혼자 일하건 팀으로 일하건 상관없다. 예컨대 직원들의 책상엔 전부 바퀴가 달려 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원하는 대로 팀을 옮기기 위해서다. 상당수 고연봉자는 혼자 일하기도 한다.
“여기(게임산업)선 이미 있는 것들을 굳이 조직화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인기를 끈 게임은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시받지 않고 원하는 아이템을 새로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밸브라는 이름도 밸브를 열면 물이 나오듯 아이디어도 터져나오라는 의도에서 지었다.
연봉이나 해고도 직원들이 결정한다. 특정 직원에 대한 연봉을 설문조사해 평균을 매겨 결정한다. 직원들의 투표로 해고가 결정된다. 때로는 게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자나 통계학자도 고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그리스 경제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로. 그는 2015년 경제장관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밸브에서 일했다.
뉴웰은 아예 게이머들도 플레이 맵을 만들고 코딩할 수 있게 외부에 에디터를 제공했다. 에디터로 제작한 유저제작콘텐츠(MOD)와 이를 개발한 아마추어 게이머들을 밸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카운터스트라이크’가 대표적이다. 밸브는 MOD를 개발한 게이머들을 통째로 데려와 카운터스트라이크 후속작을 상용화했다. 이 같은 정책 덕에 ‘팀 포트리스’ ‘포탈’ ‘도타 2’ 등 끊이지 않고 히트작을 출시했다.
온라인 게임 유통시장까지 장악
게임 시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답보 상태를 거듭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성행한 불법 무료 다운로드 때문이다. 게임사와 정품 콤팩트디스크(CD)를 복제한 해커들의 영원한 전쟁이 계속되는 듯했다.
밸브는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3년 게임시장을 뒤흔드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온라인게임 유통서비스 ‘스팀(Steam)’이다. 뉴웰은 ‘대가를 지급하는’ 온라인 구매 유통 방식을 택했다. 업계는 부정적이었다. 굳이 돈을 지급해 게임을 사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다.
뉴웰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팀을 전폭 지원했다. 수천개의 게임을 스팀에 장착하면서 할인행사를 통해 줄곧 게이머들을 끌어들였다. 구매한 게임을 서버에 저장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도입하고 간편 결제, 보안, 커뮤니티 시스템까지 지원했다.
스팀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4년인 지난 현재 게임 유통업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게이머 6500만명이 스팀으로 게임을 내려받았다. 개인 개발자들도 이제 스팀으로 자기 작품을 세계 게이머들에게 선보인다. 뉴웰과 밸브의 자유분방함이 어디까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낼지에 게이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뉴웰은 3년 뒤 MS를 퇴사했다. 그리고 게임 개발회사 ‘밸브코퍼레이션’을 세웠다. 설립 때부터 뉴웰 외에 ‘보스’나 ‘중간관리자’가 없는 밸브는 현재 온라인 게임 유통업계를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기업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뉴웰의 재산도 나날이 불어났다. 그의 재산 순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154위)보다 높은 134위다.
MS에서의 3개월 > 하버드대에서의 3년
뉴웰은 1962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중학교 재학 중 당시 빠르게 보급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진로를 바꿨다. 1980년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재학 3년 만에 하버드대에 실망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시애틀에서 MS와 첫 인연을 맺었다. MS는 운영체제 ‘MS-DOS’로 막 이름을 알린 직원 200여명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스티브 발머 부사장 눈에 든 그는 입사 제안을 받자마자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같은 하버드대 중퇴자인 빌 게이츠와도 가까워졌다. 그는 MS의 271번째 직원이 됐다.
뉴웰은 “하버드대에서 3년간 배운 것이 MS에서 3개월간 배운 것만 못했다. 거기(하버드대)선 어떻게 눈 위에서 물구나무 서고 술을 먹는지만 배웠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MS는 MS 오피스도, 윈도도 없었지만 소프트웨어에 관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이후 13년 동안 MS에서 윈도 개발에 참여했다. MS는 뉴웰이 입사한 뒤 ‘윈도 3.1’과 ‘윈도 95’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1위 소프트웨어 회사로 올라섰다.
MS에서 승진이 보장됐던 그의 인생은 1993년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시장조사를 계기로 바뀌었다. 윈도는 최고의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최고는 둠이었다. 둠을 개발한 이드소프트는 텍사스 시골에서 겨우 12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였다. 심지어 소매유통도 하지 않았다. 뉴웰과 함께 충격을 받은 팀 동료 마이크 애브래시는 이드소프트로 이직했다. 흔들리던 그도 마음을 굳혔다.
FPS 게임을 한 단계 끌어올린 첫 작품
뉴웰은 주저하지 않았다. 3년간의 준비 끝에 몇몇 동료 직원과 함께 퇴사해 사비를 털어 1996년 게임개발사 ‘밸브코퍼레이션’을 꾸렸다. 밸브는 1998년 첫 작품인 ‘하프라이프’를 내놨다. ‘레인보우 식스’ ‘언리얼’ 시리즈 등 경쟁 FPS 게임이 출시되던 때였지만 무명의 개발사 밸브가 출시한 하프라이프는 단연 선두를 달렸다.
“달리고, 생각하고, 쏘고, 살아남아라.” 하프라이프만의 광고 문구다. 다른 FPS 게임과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밸브는 이전까지 같은 패턴의 공격만 반복한 컴퓨터 인공지능(AI)을 게이머의 공격에 대응해 엄폐물을 이용하는 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하프라이프 이후 모든 FPS 게임은 키보드 자판의 W, A, S, D키를 이용해 조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밸브는 2004년 후속작인 ‘하프라이프 2’를 출시하며 이드소프트의 ‘둠3’를 누르고 FPS 1인자가 됐다.
보스도, 중간관리자도 없는 게임회사
밸브가 첫 작품부터 FPS 게임 장르를 뒤흔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 회사에는 중간관리자가 없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는다. 밸브 자체도 뉴웰이 지분을 전부 소유한 비상장 개인 회사다. 사장, 임원 몇 명 말고는 전부 개발자다. 300여명이 일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밸브에서는 혼자 일하건 팀으로 일하건 상관없다. 예컨대 직원들의 책상엔 전부 바퀴가 달려 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원하는 대로 팀을 옮기기 위해서다. 상당수 고연봉자는 혼자 일하기도 한다.
“여기(게임산업)선 이미 있는 것들을 굳이 조직화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인기를 끈 게임은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시받지 않고 원하는 아이템을 새로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밸브라는 이름도 밸브를 열면 물이 나오듯 아이디어도 터져나오라는 의도에서 지었다.
연봉이나 해고도 직원들이 결정한다. 특정 직원에 대한 연봉을 설문조사해 평균을 매겨 결정한다. 직원들의 투표로 해고가 결정된다. 때로는 게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자나 통계학자도 고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그리스 경제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로. 그는 2015년 경제장관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밸브에서 일했다.
뉴웰은 아예 게이머들도 플레이 맵을 만들고 코딩할 수 있게 외부에 에디터를 제공했다. 에디터로 제작한 유저제작콘텐츠(MOD)와 이를 개발한 아마추어 게이머들을 밸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카운터스트라이크’가 대표적이다. 밸브는 MOD를 개발한 게이머들을 통째로 데려와 카운터스트라이크 후속작을 상용화했다. 이 같은 정책 덕에 ‘팀 포트리스’ ‘포탈’ ‘도타 2’ 등 끊이지 않고 히트작을 출시했다.
온라인 게임 유통시장까지 장악
게임 시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답보 상태를 거듭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성행한 불법 무료 다운로드 때문이다. 게임사와 정품 콤팩트디스크(CD)를 복제한 해커들의 영원한 전쟁이 계속되는 듯했다.
밸브는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3년 게임시장을 뒤흔드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온라인게임 유통서비스 ‘스팀(Steam)’이다. 뉴웰은 ‘대가를 지급하는’ 온라인 구매 유통 방식을 택했다. 업계는 부정적이었다. 굳이 돈을 지급해 게임을 사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다.
뉴웰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팀을 전폭 지원했다. 수천개의 게임을 스팀에 장착하면서 할인행사를 통해 줄곧 게이머들을 끌어들였다. 구매한 게임을 서버에 저장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도입하고 간편 결제, 보안, 커뮤니티 시스템까지 지원했다.
스팀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4년인 지난 현재 게임 유통업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게이머 6500만명이 스팀으로 게임을 내려받았다. 개인 개발자들도 이제 스팀으로 자기 작품을 세계 게이머들에게 선보인다. 뉴웰과 밸브의 자유분방함이 어디까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낼지에 게이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