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자발적일 때 미덕이다. 강요된 나눔은 하향 평균화의 길이다. 강압적 배분은 부작용도 크다. 전에 정부과천청사 식당에서 식권 판매자, 그 옆에 식권 회수자가 배치됐었다. 한 사람 일에 둘을 뒀다고 공무원들조차 개탄했다. 이슬람사회주의에서는 2조 근무체제도 흔하다. A조가 공사할 때 B조는 빈둥거리고, B조가 나서면 A조는 잡담 시간이니 생산성이 오를 턱이 없다. 일 나누기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가 원조다. 옛 소련 때 3인조 전구 작업이 그런 실례다. 한 명은 장비 들고 한 명은 사다리 잡고 한 명은 전구를 바꾼다. 한 사람 보수가 셋으로 나뉘니 빈곤의 길이다.

공공의 '나누기' 시장의 '만들기'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라 단순히 나누기라면 일자리 늘리기도 어렵지는 않다. 당장 한국전력에 1만명, LH에 8000명, 서울지하철에 5000명씩 추가 채용을 강제하면 청년백수 문제도 바로 해결된다. 그 대신 그들의 월급은 50만원쯤 될 것이고, 신입들은 ‘공식 직장’ ‘정부 명함’ ‘허위 직업’ 대신 밤이나 주말에 진짜로 돈 버는 일을 찾아 나설 것이다. 취업의 세계는 이원화되고, 실제 취업 전쟁은 밤에 시작될 것이다. 북한에서 정부 가격과 암시장 가격으로 나뉘는 식이다. 그러고 보니 공산국가의 실업난 얘기는 듣지 못했다. 국가가 일자리를 분배하면 실업자는 없어지겠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가난해질 뿐이다.

다양한 시장에서 필요에 맞춰 생겨나는 게 일자리다. 재화의 생산, 서비스·용역의 제공에 합당한 보수가 따를 때 제대로 된 일자리가 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해진다. 결국 생산성의 문제이며, 이 또한 수요·공급이 생성 원리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자 결과이기도 하다. 창출만큼이나 중요한 일자리 유지도 원리는 같다.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주된 통로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안 되는 것투성이다. 케이블카도, 테마파크도, 핀테크도, 우버도 안 된다. 일자리가 생기는 길은 막은 채 세금 쓰는 곳의 일자리를 나누자는 게 대선판 공약이 됐다. 골목상권, 전통시장 지원도 청년 일자리 측면에선 역주행이다. 연봉 3000만원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1500만원짜리 일자리 유지 지원책은 관심권 밖이다. 일자리의 미스매치를 정부가 부채질했다.

공공 비대 '큰 정부' 부작용 초래

만들기로 포장된 공공부문 일자리 나누기의 더 큰 문제점은 ‘큰 정부’의 부작용이다. 비대한 정부를 누가 먹여살리나. 공공이 커지는 가분수 경제가 되면 시장의 활성화, 민간의 창의적 작동은 비례해 위축된다. 최근 4차 산업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그래서 불안하다. 기업할 자유는 막아놓고 뭘 육성하겠다는 건지…. ‘지원과 육성’ 이면의 ‘개입과 간섭’도 겁난다.

일자리 창출의 원리가 간과되고 무시되는 게 걱정이다. 결과적 현상인 실업률과 청년백수 증대 자체에 매몰돼선 근본 치료가 안 된다. 일자리는 저절로 생기지도 않지만 정부가 두드리는 계산기로 만들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올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만 2조6000억원이 잡혀 있지만 근본 대책은 못 된다. 건전한 시장을 만들고 제대로 작동되게 하는 길뿐이다. 굳이 정책이라면 산업 육성 정책 정도겠다. 이 또한 친기업, 친시장이 전제다. 일자리는 그런 노력의 성과다. 3월에 정부가 또 일자리 대책을 낸다는 게 오히려 걱정이다. 기재부도, 고용부도 만사 제쳐놓고 국회로 달려가 포퓰리즘 공약과 맞서보라. 단순 나눠먹기로는 고용 혹한기를 극복하지 못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