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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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에 대한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자인 에드거 샤인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 교수는 기업의 성장 단계마다 기업 문화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초기 단계 기업은 창업자의 가치와 철학을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며 “반면 성숙단계에서는 회사의 일상에 깊게 내재한 문화를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애플은 기술과 엔지니어 중심의 초기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펩시콜라를 이끈 존 스컬리에게 1983년부터 10년간 최고경영자(CEO)를 맡겼지만 기존 문화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뒤에야 지금과 같은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기업들도 기업 문화를 혁신해야 할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기업 문화 혁신 방안을 내놓고 있는 이유다.

‘부장님’ 없애는 삼성전자

가장 눈길을 끄는 기업은 내달 1일부터 ‘부장님’ 등의 호칭을 없애기로 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대대적인 직급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5단계로 나눠진 기존 직급체계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에 따라 네 단계로 단순화하고 임원과 팀장, 그룹장 등 직책을 제외하고는 상호 호칭을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바꾼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보다 젊고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직원 30만명의 거대 기업인 삼성전자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같은 속도와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목표다.

‘스타트업 삼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 규모를 유지하면서 기업 단위로서 최소 규모인 스타트업 문화를 이식한다는 모순적인 목표를 두고 전문가들조차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같은 문화 혁신을 ‘꼭 가야만 할 길’로 보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 경쟁이 제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는 가운데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유연한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SK그룹의 올해 화두도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다. 사업하는 방식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모두 바꾸자는 것으로, 기업 문화 혁신도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변화는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다. SK(주)가 자율근무제와 자율복장제를 지난해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중후장대 산업인 화학산업을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빅 브레이크’라는 2주간의 휴가도 보장하고 있다. 일사불란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SK플래닛은 지난해부터 임원실을 없애고 일반 직원들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혔다. 소통을 활성화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소통 확대와 자율성 고취

현대자동차그룹은 소통 확대를 통한 기업 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매월 하는 ‘리더스 모닝 포럼’이 대표적이다. ‘임직원들의 아침을 신선하게 열자’는 취지에서 주요 사업본부가 돌아가며 현안을 발표하고 회사의 전략 방향을 공유한다. 포럼 시작 전에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팀장들이 자유롭게 소통한다.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선 ‘H옴부즈맨’을 시행하고 있다. 서비스,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 의견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 방안을 찾는 고객 소통 프로그램이다.

LG그룹도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 문화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G전자가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아이디어 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직원들이 기술과 제품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여기서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스타트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즐거운 직장팀’을 신설하고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드는 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갖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