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주자들마다 4차 산업혁명을 떠드는 걸 보면 정치인에 대한 새로운 분류 기준이 한국에서 등장할 것 같다. ‘선무당 정치인’ ‘아주 선무당 정치인’ ‘말도 안 되는 선무당 정치인’ 말이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인공지능이든 사물인터넷이든 전기자동차든, 또 3D프린팅이든 로봇이든 빅데이터든 다 좋다. 기술혁명, 교육혁명을 외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그 모든 걸 떠받칠 인프라, 그중에서도 에너지 문제다. 그것도 투자수익률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고 유지·발전시켜 나갈 동력이 될 에너지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넘치는 선무당 정치인
역사적으로 장기파동을 몰고 온 그 어떤 산업혁명도 인구와 더불어 에너지는 핵심 동인이었다. 저마다 알파고를 들먹이지만 그 알파고와 이세돌의 에너지 소비가 1메가와트 대(對) 20와트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물이 연결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사물인터넷, 머지않아 전 세계 자동차 판매 3대 중 1대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기차도 있다. 그 에너지는 또 어디서 오나.
정치인, 환경단체 등이 숭배하는 제러미 리프킨이 지금을 4차는커녕 3차 산업혁명 초입기 정도로 보는 이유도 바로 에너지 때문이다. 에너지의 혁신주기는 그만큼 길고 느리다.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이 되려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각 건물의 발전소화, 잉여에너지의 저장기술, 인터넷을 통한 에너지 공유, 수소연료로의 교체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한꺼번에. 이런 에너지 이상향이 언제 도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프킨조차 그런 세상이 오기까지 앞으로 미숙 25년, 성숙 25년 등 50년을 말했을 정도다.
탈핵(脫核)의 대안이 뭔가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떠드는 대선주자들을 보면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다. 에너지 문제만 나오면 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오로지 탈핵(脫核)으로 가자는 것이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신규 원전 건설은 즉각 중단하라는 것이고 기존 원전도 차례로 문을 닫아 ‘원전제로’로 가자는 공약들이 그것이다. 아예 2040년 원전제로 국가 건설을 못 박는 정치인도 등장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원전을 위해 내가 뭘 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한국 정치인 눈엔 환경단체, 반핵 여론, 영화 ‘판도라’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다. 에너지에 관한 한 누가 더 위선적인가.
산업혁명이 몇 차일지는 에너지에 달렸다. 탈핵을 하려면 설득력 있는 대안부터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은커녕 있는 산업조차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정치인이 그 책임을 다 질 텐가. 아무래도 이번 대선은 누구를 찍더라도 선무당이 될 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