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형편없는 선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성공의 함정을 이처럼 경계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의 향기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슈퍼 호황’을 맞은 반도체업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반도체장비 전시회 ‘세미콘코리아 2017’을 찾은 업체 대표들은 “올해도 잘 팔고 있다”며 연신 웃고 있었다. 업계에 돈이 돌자 반도체 장비가 연이어 팔려 나갔다.

반도체 시장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핑크빛 전망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1980~1990년대 수십개에 달했던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치열한 파워게임을 벌인 뒤 시장에서 대부분 퇴출됐다. 미국→일본→한국으로 반도체 업계 중심축이 이동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시장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는 한 분기에 5조원씩 돈을 쓸어담고 있지만 이 또한 영원하리란 보장이 없다.

30여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일해 온 정칠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은 기자에게 “낸드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오랜 기간 낙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SK그룹 품으로 안기게 된 LG실트론의 변영삼 사장도 최근 기자와 만나 “반도체업계가 핑크빛 전망에 둘러싸인 게 우려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SK그룹과의 시너지를 생각하기보단 실트론의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작년에도 하반기에 시황이 살아날지 누가 예측했느냐”며 올 하반기 이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중국은 올해만 370억달러를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투자할 계획이다. 2년 후가 되면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9%를 중국이 차지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반도체값이 폭락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반도체는 타이밍이다. 잠시 주춤한 사이 반도체 주도권은 넘어갈 수 있다. SK로 인수되기 전까지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SK하이닉스는 지난 세월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못한 걸 지금도 뼈아프게 생각한다. 일본 반도체 업체의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길 때다. 이젠 축배를 내려놓고 신발끈을 다시 매야 한다.

박재원 산업부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