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자동차 무역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데 이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엔저(低) 정책까지 걸고 넘어지면서 일본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제약회사 임원들을 만나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통화전쟁' 나선 미국] 태클당한 엔저…비상 걸린 아베노믹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면서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달러당 112.08엔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11월30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전날 오후 5시 시점보다 0.87엔 오른 장중 112.65엔에 거래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는 (환율이) 외환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것, 통화의 경쟁적 절하를 피하는 것,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금융정책은 환율 수준이나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은 최근 엔저 흐름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일본은행은 2013년 대규모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여전히 연간 80조엔(약 820조원)가량의 돈을 풀고 있다. 이로 인해 2013년 3월 말 146조엔이던 본원통화는 지난해 12월 말 427조엔으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엔화가치는 지난해 12월 중순께 달러당 118엔 아래로 떨어졌다.

아사히신문은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금융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에 우려를 나타냈다. 오는 10일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환율 문제가 논의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의 양적완화가 엔저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엔저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일본의 해명을 미국이 이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