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가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그 맥락에서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소위 국책금융기관의 국내법상 지위를 재정립하기 위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요컨대 이들을 국내법상 ‘공기업’으로 분류해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현재 이들 국책금융기관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정부지분 소유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민간금융회사와 시장원칙에 따라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이런 기존 분류를 버리고 이제 이들의 지위를 ‘공기업’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이들 금융기관과 여타 공기업을 국내법상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공기업 관리·감독 강화와 마찬가지로 국책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더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책금융기관을 여타 일반 공기업과 동일한 카테고리에 포함시켜 영업상황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대내외에 공식화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법인지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변경은 이미 국제통상분쟁에 노출돼 있는 국책금융기관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이들 금융기관에 대한 공기업 지정은 정부기관과의 관련성을 우리 스스로 공식화하게 되고, 이들의 영업활동이 결국 시장원칙보다는 정부의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책금융기관들은 그간 우리나라와 관련해 진행된 4건의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분쟁에서 핵심 연결고리로 간주됐다.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들 분쟁에서의 대체적인 승패가 갈렸다. WTO 분쟁을 거치면서 그간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은 이들 국책금융기관은 정부기관이 아니고 정부의 통제를 받는 기관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2001년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처음으로 산업은행의 법적 성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래 이런 입장은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다. 물론 이에 대해 미국 등 우리 교역 상대국들은 이들을 한국 정부기관과 동일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반박해 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차제에 우리가 국책금융기관을 공기업으로 분류하는 것이 상당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정부와 이들 금융기관과의 연관성, 정부의 이들에 대한 법적 통제권이 공식화돼 향후 비슷한 통상분쟁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더욱 어렵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들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상품의 제공, 채무재조정 등이 모두 정부의 조치로 간주돼 WTO 보조금 협정 저촉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금융기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면 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한 금융건전성 감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 금융건전성 감독은 통상협정이 허용하는 조치인 것으로 그간의 WTO 분쟁사례들은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국책금융기관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면 금융건전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일반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와 동일한 선상에서 접근하고 나아가 이를 법령에 명시하면 오히려 한국 입장이 더욱 취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해운업·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우리 국책금융기관의 행보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 국책금융기관의 공기업화를 선언하는 제도 변경은 그야말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는’ 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호무역주의의 파고가 우리를 덮치는 시점에 이런 제도변경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재민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