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미래성장성 반영 안해
주가는 현재보다 미래가치에 민감
두산·현대중공업 등 주가 오히려 올라
자금조달 힘들면 주가에 부정적
◆두산 계열사 주가의 반전
지난해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을 조정한 국내 상장사는 총 29곳이다. 등급을 내린 기업이 20곳, 올린 기업은 9곳이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이 이들 기업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 중 9곳(45%)은 등급 공시일부터 이날까지 주가가 상승했다. 반대로 등급이 오른 기업 중에서는 6곳(67%)의 주가가 미끄러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작년 2월19일 (주)두산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두산그룹 네 개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한 단계씩 낮췄다. “2015년 대규모 순손실을 내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된 데다 실적 회복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였다. 2015년 이들 회사가 낸 순손실 합계는 1조5450억원이었다. 그러나 이 중 두산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지난 1년 새 주가가 껑충 뛰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 상승률이 118.07%로 가장 높았고 두산인프라코어의 모회사인 두산중공업과 그룹 지주사인 두산도 각각 65.32%, 38.00% 상승했다.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룹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작년 11월 자회사인 두산밥캣의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면서 그룹 전반의 자금 사정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 중 주가도 상승한 곳은 크라운제과(6.16%)와 대한유화(15.68%), 대성엘텍(16.58%) 등 세 곳뿐이었다. 영원무역(-39.23%)과 한미약품(-59.02%), 노루페인트(-36.74%)는 주가가 30% 이상 빠졌다.
◆과거냐, 미래냐
이처럼 신용등급과 주가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주식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에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전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들은 과거 3~5년간 실적과 재무구조 추이를 토대로 1년에 한두 차례 신용등급을 매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 회사가 과거 빌린 돈을 제때 갚을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의 성장성보다는 현재 회사가 보유한 현금과 차입금이 얼마인지를 중요시한다”며 “기업을 보는 관점부터 주식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가가 오히려 신용등급에 선행해 움직인다는 의견도 있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팀장은 “등급이 강등될 위험이 있는 기업의 주가는 미리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등급이 떨어졌는데도 주가가 오른 기업은 앞으로 신용도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신용등급 자체가 시장의 판단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도 등급과 주가 간 괴리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용등급이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 등 기업의 자금 조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작년 6월 등급이 나란히 내려간 뒤 주가가 22.94%, 19.23% 오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1년 넘게 회사채 발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실적 회복에 대한 전망만 믿고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