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닦는 리퍼트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13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로빈 리퍼트와 아들 제임스 윌리엄 세준, 딸 캐럴라인 세희. 사진공동취재단
< 눈물 닦는 리퍼트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13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로빈 리퍼트와 아들 제임스 윌리엄 세준, 딸 캐럴라인 세희.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한국에서 1주일을 보내면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긴다. 항상 뭔가 일어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언젠가 떠나는 날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민의 환대를 뒤로하고 막상 한국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13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한국을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4년 10월 한국에 부임한 그는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정부 출범에 맞춰 2년3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마무리한다. 리퍼트 대사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트럼프 정부의 새 주한 미국대사가 정해질 때까지 마크 내퍼 부대사가 직무를 대행한다.

퇴임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그는 한국어 공부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방문, 2015년 3월 피습사건 등 자신이 한국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며 “한국 국민이 보여준 환대와 성의, 우정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 로빈 리퍼트 여사, 두 아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 리퍼트 대사는 “앞으로 양국관계를 지켜볼 분들께 한·미 동맹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며 “양국은 역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의견 불일치가 있어도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간중간 눈물과 함께 울먹이는 소리로 발표문을 읽은 그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밝은 미래를 지켜보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리퍼트 대사는 미국 내 아시아 정책통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설계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 국방부 장관 비서실장,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등을 거쳐 2014년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당시 나이 만 41세로 역대 최연소 주한 미국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경력으로 볼 때는 파격 인사였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농구를 같이하고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통령 막냇동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오바마 측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 놀랍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성 김 전 대사, 1970년대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한 캐서린 스티븐스 전 대사처럼 한국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한국 국민과 친근한 관계를 쌓아왔다. 부임 직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을 운영하며 일반 시민과도 활발히 소통했다. 2015년 1월 태어난 아들에게 ‘세준’, 지난해 11월 태어난 딸에게는 ‘세희’라는 한국식 중간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세준, 세희 두 자녀의 출산”을 꼽으면서 “세준이 백일잔치와 돌잔치에 많은 분이 찾아와 도와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9월 한국 철인3종 선수들과 함께 한강을 헤엄쳐 건넌 일을 떠올리며 “세 치수나 작은 전신수영복을 입고 먼 거리를 헤엄치자니 걱정스러웠지만 사람들의 응원 덕에 건널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마크 리퍼트란 이름은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더 특별하다. 리퍼트 대사는 201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될 만큼 한국 야구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는 7, 8명 정도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 보는 것 자체로 즐겁다”며 “한국 특유의 응원 문화가 놀랍고 특별했다”고 평했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가 열리는 것이 기쁘다는 리퍼트 대사는 “미국에서도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 야구를 계속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 후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미국으로 돌아가 차분히 생각해보겠지만 앞으로도 한·미 관계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