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작심백일도 힘들어…왜 나는 '몸짱 결심'만 할까
1월은 전국 헬스장이 ‘반짝 특수’를 누리는 시기다. 지난날의 못난 나와는 작별하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며 헬스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2017년 새해 목표로 운동과 다이어트를 1순위로 꼽았다.

동시에 서점에서는 이런 책들이 팔려나간다.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 《나는 오늘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게으름도 습관이다》…. 새해 첫날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기 일쑤여서다. 아침 출근길 만원버스, 연일 이어지는 야근, 상사의 눈치까지 새해 운동 결심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다양하다. 올해는 작심삼일이 ‘작심백일’이 되기를 바라며 운동장으로 향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만보기 게임’ 덕에 운동하는 김 대리

장기적인 건강 관리를 위해선 ‘생활 밀착형’ 운동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31)는 몇 달 전부터 동료들과 ‘만보기 게임’으로 불리는 각종 걸음 앱(응용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걸음 수를 에너지로 환산해 100여가지의 행성을 생성하는 게임부터 누적 걸음 수가 1만보를 돌파할 때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 음료 등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게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친구로 등록한 사용자와 서로의 걸음 수를 비교하고, 그날의 승리자를 알려주기도 해 은근한 경쟁 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김 대리는 “사무실에 앉아서 근무하다 보면 운동은커녕 걸을 일도 많지 않은데, 앱을 깔고 나서부터 한두 정거장 정도 거리는 걸어 다니게 됐다”며 “운동과 게임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5년차 직장인 박 대리(30)는 지난해 말부터 건강 관리 앱을 사용하고 있다. 매 끼니 먹은 음식과 하루 운동량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물 마신 횟수까지 챙긴다. 박 대리는 “평소보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거나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나오는 날에는 10층에 있는 사무실에 걸어 올라가 운동량을 채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취미에서 ‘제2의 인생’을 위한 준비로

우연히 시작한 운동에 빠져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한 대형 유통회사에 다니는 이 주임(30)은 3년째 요가를 배우고 있다. 4년 전 입사 후 잦은 회식과 야근에 몸무게가 많이 늘어 점심시간을 활용해 요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이 빠지고 체형이 교정되는 재미에 다녔다. 2년 넘게 배우면서 욕심이 생겼다. 요가 선생님이 자세도 좋고, 유연성도 좋다며 요가 강사자격증 수업을 들을 것을 권유하면서다.

그 후 이 주임은 1년 동안 요가 강사자격증과 플라잉요가 강사자격증을 땄다. 최근에는 필라테스 강사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 주임은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요가 강사로 이직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에도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더욱 솔깃하다”고 귀띔했다.

반면 상사 눈치를 보느라 운동도 마음대로 못하는 직장인도 많다. 대기업 재무팀에 근무하는 박모씨(29)는 자타공인 ‘운동광’이다. 바빠서 운동을 못한다는 말은 그에게 핑계일 뿐이다. 새벽 2시 퇴근 후 24시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수면실에서 잠을 잔 뒤 샤워하고 다시 출근하는 그를 보고 회사 동료들은 혀를 내두른다.

1년마다 운동 종목도 바꾼다. 크로스핏부터 복싱, 주짓수, 크라브마가까지 그가 섭렵한 종목도 다양하다. 매일 야근하느라 피곤한데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늘 이렇게 답한다. “운동은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한다는 사실을 회사에 숨기고 있다. 직장 상사가 “일은 안 하고 운동할 생각만 한다”며 눈치를 준 것. “요즘 일이 편한가 보다”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박씨는 억울하기만 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마련인데, 운동 때문에 업무를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합니다.”

‘아침형 인간’ 되려다 운동까지 그만둬

직장인들이 운동을 포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원대한 목표를 잡아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워서다. 직장인 최모씨(33)는 의욕만 앞서 결심을 포기하게 된 경우다.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겠다는 생각에 아침 운동을 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 2회 퍼스널 트레이닝(PT) 받기를 4개월. 운동이 오히려 생활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다가 토할 정도로 힘들더라고요. 회사에선 점심 먹고 나서 퇴근할 때까지 졸음이 쏟아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어요. 아침이라 힘이 없다는 핑계로 쉬엄쉬엄 했더니 눈에 띄는 변화도 없었죠. 결국 운동에 질려버려 휴식을 선언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을 핑계로 운동 중단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정 과장은 지난해 1월 ‘올해는 1주일에 세 번 무조건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3월까지 다짐을 지켰다. 몇 년 전 서울 강남에 새로 지은 회사 사옥에 최첨단 피트니스 시설이 있어서다. 정 과장은 회원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까지 거쳤다. 운 좋게 당첨된 그는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헬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3월 말 무너졌다. 정 과장의 부서가 다른 건물로 이전하면서다. 회사 주변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시설도, 다니는 회원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 때 정 과장은 운동을 포기했다. 올해는 새로운 결심도 하지 않았다. “아, 인생 처음으로 ‘몸짱’이 될 기회였는데 회사가 이전하는 바람에…. 나오는 뱃살을 보자니 한숨만 나옵니다.”

운동 대신 ‘약’을 선택한 현실주의자들

운동을 하느니 좋은 약을 챙겨 먹겠다는 ‘현실주의자’들도 있다. 카드회사에 다니는 경 차장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종합 영양제, 눈에 좋다는 루테인, 비타민C 등을 상시 복용한다. 이른바 ‘약 마니아’다.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블루베리도 매일 먹는다. 요즘 그는 프로바이오틱스 예찬론자가 됐다. “항생제가 남용되는 지금, 우리의 장엔 더 이상 좋은 균이 남아 있지 않다”는 친구의 얘기에 솔깃해 작년부터 매일 아침 먹기 시작했다. 장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든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극 홍보한다. “아침에 화장실 갔을 때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는 말과 함께.

운동 대신 ‘이색 다이어트’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한 가전제품 제조회사 3년차 직원 이모씨(28)는 올해부터 ‘생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키 172㎝에 60㎏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유자였던 이씨는 입사 후 2년 만에 체중이 14㎏이나 불었다. 1일 1식 다이어트, 고기·저염분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는 황제 다이어트, 조깅·자전거 동호회, 피트니스클럽 개인 강습 등 온갖 다이어트를 섭렵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그였다.

그때 ‘생존 다이어트’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이어트는 △회식 전 물배를 채우기 △술을 피하지 않되, 안주는 먹지 않기 △땅콩·아몬드 등 견과류를 입에 달고 살면서 폭식 예방하기 △10분짜리 맨몸 운동하기 등 간단한 것들이었다. “현실적으로 매일 한 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힘든 일이잖아요. 일상 속에서 조금만 변화를 주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꼭 성공할 것 같습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