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민첩한 정치
휴일 저녁, 아이들이 보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전에 못 보던 장면을 목격했다. 출연자가 음악을 찾아 듣는데, 둥근 스피커 같은 데다 “OOO, 무슨 곡을 들려줘~”라고 말하면 잠시 후 그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물어보니 요즘 통신사에서 판매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비슷한 장면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찾았는데, 이제는 그냥 말로 하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시간이나 날씨 같은 정보나 간단한 대화도 된다니 음성인식 처리 기술이 탑재된 인공지능 비서라 할 만하다.

바둑에도 이전부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상황을 판단하고 택하는 행위의 비중이 워낙 커서 인공지능의 추격은 쉽지 않았다. 상당 기간의 격차는 불가피하다고 여겨질 만큼 인간의 기량이 잘 발휘되는 분야가 바둑이었다. 그런데 10개월 전 ‘알파고’는 그 격차를 뛰어넘어 단숨에 일류 기사를 앞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장에 있던 나도 충격을 받았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은 이를 기화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추세에 대한 특정 개념과 진단이 이번처럼 신속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있던가. 2016년의 이슈를 꼽은 랭킹 상위권에는 알파고가 거의 올라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대응은 이미 우선 과제가 됐다. 나 역시 국회로 들어온 뒤 알파 포럼, 4차 산업혁명 포럼 등 연구 모임에 참가하며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한 것은 아무래도 지난해 열린 다보스포럼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매년 1월 하순에 열리는 다보스포럼은 세계가 직면한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데 최근 10년간 권력이동(2007), 집단혁신(2008), 위기 이후(2009), 더 나은 세계(2010), 새로운 현실(2011), 대전환(2012), 유연한 역동성(2013), 세계의 재편(2014), 새로운 세계 상황(2015)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2016년의 핵심 주제가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는데 어떤 해보다도 큰 반향과 공감을 불러 모았다. 크게 보아 10년에 걸친 세계화와 변혁 시리즈의 결정판이었던 셈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량을 넘어선 만큼 이제 우리는 ‘수많은 알파고’와 살아가야 한다. 일자리의 창조적 파괴가 수반된다.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은 “700만개의 전통 일자리가 소멸하고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조사는 한국도 2025년까지 1600만명 이상이 영향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속도에 적응하는 사회·경제는 발전하는 반면 좌절과 불만도 늘고 도태되는 시스템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여기에 대해 올해 다보스포럼이 제시한 주제가 ‘민첩하게 대처하는 리더십’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으로 대처하자는 메시지인데,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 현실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 아닐까 한다. 오랜 대치로 인한 군살은 빼고 실질의 향상에 마음을 모아가는 ‘민첩한 정치’를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인공지능 스피커는 하나 사서 써보려고 한다.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