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무기력증과 저성장을 이전에 경험한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부 좌파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최근 스위스에선 재정부담을 우려한 국민이 기본소득 도입을 부결시킨 반면 일부 국가에선 특정 지역에서의 시범 운영을 통한 제도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시민단체 주도로 지난 6월 모든 성인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주는 기본소득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하지만 유권자 76.9%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9월에는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는 법안도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반대가 60%를 넘었다. 스위스는 이미 전반적으로 소득·연금 수준이 높은 데다 복지를 확대하면 결국 증세로 이어진다는 점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시민단체와 야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제안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에선 최근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후보 등을 중심으로 소득보장에 대한 제안이 이뤄진 정도다. 영국도 야당인 노동당이 ‘앞으로 연구를 해보겠다’는 의견을 밝힌 수준이다.

기본소득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내년에 무작위로 뽑은 표본집단 1만명에게 월 55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2년간의 실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평가되면 국가정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중부 대도시 위트레흐트시 등에서 개인 기준 월 972유로(약 12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다만 정부가 제시하는 일을 하면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본소득만 받고 일은 못하게 하는 등 수급자를 4개 실험군으로 나눠 실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일하기 원하는지, 어느 수준의 복지제도를 원하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