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溫泉)은 주로 화산지대에서 솟는다. 환태평양 지진대인 일본에서는 웬만한 땅만 파도 온천수가 나올 정도다. 지역대에 따라 섭씨 20~25도 이상의 뜨거운 물을 온천으로 분류하는데, 수온과 관계없이 무기물질이나 가스성분이 많은 건 광천(鑛泉)이라고 한다. 유럽에선 독일의 바덴바덴과 터키의 파묵칼레가 온천으로 유명하다. 미국 옐로스톤의 간헐천은 하늘 높이 치솟는 물줄기로 장관을 이룬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도고온천은 3000년 전부터 애용됐다고 한다. 로마의 대욕탕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온천수의 의학적 효과를 밝힌 건 히포크라테스다. 2000여년 전에 이미 피부병과 관절염·부인병·신경통·위장병 치료효과를 확인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온천욕이 활발했다. 고구려와 신라 왕의 온천행차 사례가 여러 곳에 나온다. 그곳에서 치료뿐만 아니라 유락(遊樂)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엔 수천명이 수행했으니 단순한 목욕 나들이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였다.

문헌들을 살펴보면 신라의 동래·수안보, 백제의 온양온천이 예부터 이름났고, 이후 백암·유성·오색·덕산·마금산·해운대 등이 유명해졌다. 강화도조약 이후엔 일본의 사설 철도회사가 철도와 온천·호텔을 연계 개발하기도 했다. 온천이 있는 동네는 온양(溫陽), 온수동(溫水洞), 온정리(溫井里) 등 ‘온’자를 쓴 지명이 많다. 이런 곳에는 다리를 다친 학이나 사슴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나았다는 백학(白鶴)·백록(白鹿) 전설이 따라 붙는다. 동래의 오래된 여관인 백록관이나 녹천탕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온천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여유롭게 해준다. 그래서 속마음을 서로 터놓는 ‘알몸 대화’의 장소로 애용된다. 이른바 남자들의 교감 방식이다.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국 판매점·대리점주와 유명 온천지 아타미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경영을 논했던 일화처럼 비즈니스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1999년 한·중 외무장관이 이천에서 온천욕을 함께하며 현안을 조율한 것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도 ‘온천 회담’을 자주 하곤 했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 정상들이 상대국 온천에서 목욕 대화를 자주 나눴다.

이번에도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자신의 고향 온천으로 초대해 목욕 회담을 했다. 그러나 영토·경협·안보 등 안팎으로 얽힌 문제가 많아서 결과가 어떨지는 미지수다. 하긴 같은 탕에 들어가서도 ‘어, 시원타’와 ‘앗, 뜨거워’라는 반응이 각각 나오는 게 현실이니 그 또한 어쩌겠는가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