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넘나드는 행보…"트럼프 스타일은 탈이데올로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의 스타일은 ‘탈(脫)이데올로기’라는 분석이 나왔다. 당선 후 한 달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 행보가 그 근거로 제시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이념의 틀을 흔들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트럼프 스타일은 기존 이데올로기적 틀에서 해석하기 힘들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참모와 장관 후보 인선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트럼프는 ‘극우 보수주의자’ ‘백인 인종 우월주의자’ 등으로 비판받고 있는 스티브 배넌 전 선거캠프 재무위원장을 백악관 수석전략가 및 선임고문으로 임명했다.

이어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강경한 이민규제 정책을 주장해온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을 법무장관에, “이슬람 과격단체들을 격퇴하기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어떤 나라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고수한 마이클 플린 전 예비역 중장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앉혔다. 모두 공화당 주류 보수파가 환영하지 않는 인물이다.

반면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주지사와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각각 부통령 후보와 백악관 비서실장에,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지사를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 골드만삭스 임원 출신인 스티븐 므누신 듄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을 재무장관 후보로 각각 내정해 보수 주류의 박수를 받았다.

사회·경제 분야에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전 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를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판하면서도 차기 정부는 10년간 1조달러를 투입해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미국 내 기업의 해외 이전도 막고 있다. 정부가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 기조인지, 시장 실패를 줄이기 위해 개입을 정당화하는 ‘큰 정부’ 기조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외교 정책은 즉흥적인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의도된 전략인지 헷갈린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대통령)과 전화통화해 중국과의 긴장관계를 예고했다. 이와 달리 러시아와는 여러 채널을 통해 관계 개선 의지를 타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선캠프 여론분석가인 토니 파블리지오는 “트럼프 당선자의 움직임은 기존의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고 평가했다. WSJ는 “그의 정책은 전통적인 진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없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정치사에서 탈인종주의 시대를 열었다면 트럼프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열어간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