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상징적인 죽음을 주로 다뤘는데 이번 시집에는 진짜 죽음에 대한 시가 많습니다. 긴 세월 동안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며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얘기입니다.”

내년에 등단 60년을 맞는 황동규 시인(78·사진)은 최근 발표한 열여섯 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에 대해 29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1958년 월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황 시인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며 절절한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 ‘연옥의 봄’ 연작 네 편을 포함해 모두 77편의 시가 실렸다.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등의 시로 잘 알려진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연옥의 봄’ 연작 네 편은 ‘고요한 죽음의 풍경’에 대한 시들이다. ‘연옥의 봄 1’에서 시인은 꿈속에서 추억을 더듬다가 문득 잠에서 깬다. 꽃향기가 코끝에 닿으며 생의 감각이 은은하게 밀려온다. 꿈속에 만난 사람은 언젠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그대’. 시인은 자신도 곧 뒤따라갈 것임을 깨닫는다. “그대, 혹시 못 만나게 되더라도 / 적어도 이 봄밤은 이 세상 안에서 서성이게.”(‘연옥의 봄 1’ 부분) ‘연옥의 봄 4’에서는 농담하듯 유쾌한 자세로 죽음을 대한다.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은 채 갈 거다. / (중략) / 개펄에서 결사적으로 손가락에 매달렸던 게, / 그 조그맣고 예리했던 아픔 되살려 갖고 갈 거다.”

황 시인은 “죽음은 피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맞아야 하는 존재”라며 “그래야만 죽음의 실체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삶이 뭔지도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 사람의 죽음을 많이 보지만 정작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죽을 때까지 깨끗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가가 관심”이라고 말했다.

감성과 동떨어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일수록 오히려 서정시가 더 필요하다는 게 황 시인의 지론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삶의 가치’의 절반은 감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 시인은 “서정시는 자기의 정서와 감정을 재검(再檢)할 기회를 준다”며 “자신이 지금까지 뭘 느끼지 못했고, 앞으로 경험과 감각을 어떻게 넓혀야 하는지 서정시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가 부드러워졌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시든 소설이든 문학은 마지막까지 예리해야 한다”며 “싱거운 시를 쓰느니 차라리 절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갈수록 시를 쓰는 게 힘들어요. 앞으로 1년은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7~8년 전에 ‘3~4년만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1년을 잡고 있는 지금의 예상도 달라지지 않겠어요?”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