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과 외환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것 같은 기분입니다.”

25일 만난 기업인 A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등장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도 임박하면서 경제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다”며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로 모든 관심이 정치에만 쏠리고 정부 리더십은 진공상태가 돼 아무도 경제를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요즘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의 불안은 상상 이상이다.

A씨는 특히 외교 공백을 가장 걱정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관련해 트럼프 당선자가 다른 나라를 손볼 가능성이 높은데 아시아에선 한국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중국은 강하게 압박하기 부담스럽고,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빨리 트럼프 당선자를 만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정부 기능이 정지된 한국은 미국이 손보려 하더라도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저항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Fed발(發)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 한국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평소 같으면 이런 대외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했을 기업들은 꼼짝도 못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언제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 총수들은 앞으로 특검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가야 할 처지다. 예년이라면 임원 인사 등을 통해 조직을 추스르고 내년 사업을 준비해야 할 때지만 적지 않은 기업이 정치권과 검찰 움직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이 똘똘 뭉쳐 살 길을 찾았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얘기도 나온다. A씨는 “시민들은 촛불 들고 광장으로 가고, 기업들은 수사 받기 바쁘고, 관료들은 일손을 놨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만 계산하고 있다”며 “도대체 대한민국의 앞날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권이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관료들은 책임감 있게 일하고, 기업인들은 책임 여부를 신속하고 명확히 가려 이젠 경영현장으로 돌려보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노경목 산업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