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세계 교역둔화, 보호무역주의 탓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세계화가 죽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계화의 종언에 관한 보도가 지나치게 과장된 걸까? 세계 무역량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더 둔화할 것이며 그게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줄까?

세계 무역량은 트럼프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다. 올해 1분기에 이미 0% 수준을 기록했고 2분기에는 1%가량 감소했다. 2010년 이후 연 2% 수준으로 증가율이 낮아진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상품·서비스 생산규모는 연 3% 이상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 총생산(GDP) 대비 무역량 비중은 줄었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이 비중이 증가해 온 것과 대조적이다.

세계화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안한 움직임’이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대한 대중의 반발, 그리고 트럼프의 승리 등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보기 드문 인과관계를 여기서는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GDP 증가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무역 증가세가 둔화한 것이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투자지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이를 뚜렷이 보여준다. 투자지출은 무역 집약적인 행위다.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자본재를 생산하는 행위는 독일과 같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생산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 무역량 증가세 둔화는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진 것과도 관계가 있다. 2011년까지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두 자릿수였고 중국의 수출·수입 증가율은 더 높았다. 지금은 중국 성장률이 3분의 1가량 떨어졌고 자연히 중국의 무역 증가도 둔화시켰다.

중국의 기적적인 성장은 지난 25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딱 한 번만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의 ‘따라잡기 단계’는 끝났다. 글로벌 무역 엔진도 따라서 속력을 줄일 것이다.

지금까지 또 다른 세계 무역의 엔진은 글로벌 공급사슬이었다. 부품 관련 교역은 컨테이너 운반이 일상화되는 등 물류 부문의 발전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해운업 효율성이 운송 대상인 제품 생산의 효율성보다 더 빠르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무역 증가세 둔화를 걱정해야 할까? 의사가 열이 나는 환자를 걱정하는 정도의 의미라면, 그렇다. 고열은 그 자체로 병이 아니고 어떤 상황의 ‘증상’이다. 보통은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은 투자 감소로 인해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것, 바꿔 말해 ‘장기 침체’다.

이게 기본적인 상황이다. TPP 등 무역협정은 이런 문제를 에둘러서만 다룰 뿐이다. 투자와 성장을 직접 촉진하기 위해선 각국 정부가 인프라에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더 적절하다.

글로벌 금융자본의 움직임은 무역량보다 훨씬 극적이다. 2009년 이후 각국 자본 유출입을 다 합한 금액(물가상승률 효과 제외)은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극적이라고 해서 ‘경고음’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은행의 국외 대출·차입이 크게 줄어든 탓이어서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위기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식·채권시장의 대출·차입이 줄었단 뜻이다. 이런 차이는 규제 강화에서 비롯됐다.

이제 우리는 미국 정부가 도드프랭크법을 철회하고 지난 수년간의 금융개혁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전망을 접하고 있다. 덜 가혹한 금융규제는 국제 자본의 이동을 되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금융규제 철회)을 조심해야 한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은 프로젝트신디케이트와 협약을 통해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의 글을 매달 한 차례 게재합니다.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