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뻐하는 ‘퍼스트 패밀리’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승리를 확정지은 9일 새벽(현지시간) 연설을 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뉴욕주(州) 힐튼미드타운 호텔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 기뻐하는 ‘퍼스트 패밀리’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승리를 확정지은 9일 새벽(현지시간) 연설을 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뉴욕주(州) 힐튼미드타운 호텔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외교안보·경제지형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미국 내에선 대대적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과 기존 정치관행의 변화를, 대외적으로는 이민규제 강화와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클린턴시대’가 아니라 ‘트럼프시대’를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경제 위기를 활용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 정치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정치경험이 전무하다. 2000년 개혁당 소속으로 대통령 경선에 나선 적이 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지난해 6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공직을 맡거나 출마한 경험이 없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기존 정치권과 언론은 TV 리얼리티쇼 스타의 해프닝 정도로 취급했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출마 17개월 만에 공화당 경선판을 뒤엎었다. 8일(현지시간) 본선에서는 주류 정치인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까지 무너뜨렸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라는 ‘배’를 띄운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정치·사회 구조적인 변화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일군 경제지표만 보면 미국 경제는 견실하다. 2014년과 지난해 모두 2.5%씩 성장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독보적이다. 올해도 1.8% 정도 성장해 선방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업률은 4.9%(10월 기준)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올 들어 월평균 15~20만개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다.

중요한 건 유권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다. 미국은 비자발적인 파트타임직이 600만명에 달한다. 실업자 수는 여전히 790만명(9월 기준)에 이른다.

트럼프는 이런 유권자의 불만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대선 슬로건에 담아 대변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보호무역주의, 이민규제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기존 정치권이 놓친 실직자와 구직자의 불만을 정치적 집단으로 묶는 데 주효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생활고의 원인을 일자리를 빼앗아간 민주당 정부의 자유무역정책, 관용적인 이민정책, 소모적인 외교정책,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워싱턴의 무능한 정치 탓으로 몰아붙였다”고 분석했다.

◆엘리트 정치권에 분노

보호무역주의, 이민규제와 같은 그의 정책 공약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저소득·저학력 백인계층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히스패닉과 흑인·아시안 등 소수인종 유권자 비중은 31%에 달했다. 4년 전보다 2%포인트 높아졌다. 백인 비중은 그만큼 줄었다.

미국 퓨리서치는 2065년이면 전체 미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백인 비중이 62%에서 46%로 줄고, 히스패닉은 14%에서 24%로, 흑인은 12%에서 14%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백인들은 급격한 인구구성 변화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지만 입 밖에 적극적으로 내진 않았다. 트럼프는 이들의 불만을 거침없이 대변했다. 인종차별, 여성비하, 반(反)이슬람 발언 등 막말은 백인들의 ‘소리 없는’ 지지 속에 묻혔다.

기성 엘리트 정치권을 상징하는 클린턴 후보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데 이어 상원의원, 국무장관에 이르기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기부금을 받고 특혜를 줬다(pay-to-play)’는 클린턴재단의 비리 의혹과 국무장관 시절 공적인 업무를 개인용 이메일로 처리한 일은 클린턴의 신뢰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혔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을 지지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류 언론에 대한 역작용도 적지 않았다.

반면 유권자들은 창업과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사업가로서 변화무쌍한 커리어를 쌓아온 트럼프에게서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클린턴에게 ‘현상 유지할 후보’, 트럼프에겐 ‘변화를 추구할 후보’라고 일찍이 꼬리표를 붙인 이유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