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된 뒤에 지인이나 친척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내가 정상으로 보이는가”였고, 그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은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난 정상이지”였다. 얼핏 동일해 보이는 두 질문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음은 완전히 반대다. 전자가 자신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면, 후자는 애초부터 자신이 정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세간에 말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에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이 문제가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의 테두리 안이었다. 비록 일이나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울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고 때때로 잠도 오지 않는 등 다양한 증상이 있지만 대개 일시적이고 비교적 가벼우며 스스로 극복 가능한 정도였다. 종종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성숙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분들은 자신이 어떤지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을 뿐 스스로도 심각하다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분들은 늘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왔던 분들이며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정도였다.

반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스스로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소수의 사람도 있었지만 다수는 자신의 문제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고,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려는 노력이나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 돌아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판단해야 하는데 이미 문제가 없다고 전제하고 나니 사실 노력할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시험을 보기 전에 자신이 다 아니까 100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러면 당연히 공부는 하지 않게 될 것이며 좋은 결과도 얻기 힘들다.

진료실에서는 이런 분들을 환자로서도 보지만 종종 보호자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증상을 보여 찾아오는데 증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환자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문제, 나아가 보호자의 문제가 더 큰 경우가 자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화가 막힌다. 아이에게 서슴없이 상처주는 말을 하고 때로는 물리적인 폭력도 가하며 아예 무관심, 무책임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상담 중에 확인됐는데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일관한다. 그 이야기 안에 정해진 논리는 없다. 그냥 자신이 문제가 없으니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동어반복만 있을 뿐이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생략돼 있고 그로 인해 지금껏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고 지내온 모습이 관찰된다. 행여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남 탓을 하면서 지낸다. 이분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일단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다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우선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는 전제부터 버리고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책을 읽어도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가 있다면 아무 소용없다. 겉으로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남의 탓을 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있어야 진정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약간의 강박, 약간의 의심, 약간의 히스테리가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이 말은 곧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인간의 본질임을 시사한다. 100년 전에 프로이트가 했던 이 말이 요즈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