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기자회견도 취소
서울대 총학은 지난 26일 저녁 발표한 ‘주권자의 이름으로 정권에 퇴진을 명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철회하고 수정·보완해 다시 발표하겠다고 27일 밝혔다. 총학은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돼있던 시국선언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총학은 전날 저녁 10시30분께 서울대 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와 총학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시국선언문을 공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대통령이 아닌 어두운 그늘 아래 있는 누군가가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국가권력의 칼날이 향할 곳을 통제는커녕, 짐작할 수조차 없음을 의미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 시국은 정국을 평론할 지성이 아니라 정국을 바꿔낼 지성이 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며 “우리는 공화정의 구성원으로서 저항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국선언문이 공개된 후 스누라이프엔 시국선언문의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한 학생이 올린 ‘총학생회는 절대 현재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지 말라’는 글은 300여명의 추천을 받고 베스트 게시물이 됐다. 글쓴이는 “한 글에 의미가 불분명한 ‘공화정’이란 단어가 9번이나 반복되고 현 시국에 비해 선언문의 내용이 힘이 떨어진다”며 “역사에 남는 시국선언문이니만큼 급하게 정돈되지 않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오점을 남기기보단 수정을 통해 내용을 보완하자”고 요구했다.
다른 서울대 학생들 역시 “역대 시국선언을 보면, 절실히 깨우치지 못한 혹은 알고도 외면한 지성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되, 젊음의 패기가 서려있다 싶어서 되새기고 또 되새기게 하는 참 문장이었다”며 “지금의 시국선언문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학생사회에서 보기 드문 시국선언문 철회에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서울대 학생은 “현 시점에서 학생들이 나선다는 데 의미가 있지 문장력을 지적하는 건 본질이 아니다”며 “총학이 이미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글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내리고 재공표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총학은 이날 새벽 4시께 시국선언문 철회를 발표했다. 이들은 “부족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에 대해 학우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학우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시국선언문을 수정하고자 한다”며 원래의 시국선언문을 삭제했다. 총학 측은 새로운 시국선언문이 준비되는대로 다시 시국선언 발표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