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이나 범죄소설 같은 걸 써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장난기가 많아서인지 이리저리 비틀고 결국 예측 못한 방향으로 가게 됐죠. 저도 정체성을 모르는 소설이 됐습니다.”

소설가 천명관 씨(52)는 최근 새로 낸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예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천씨가 새 장편을 낸 것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만이다. 이 작품은 지난 3~4월 카카오톡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돼 8만여 독자를 먼저 만났다. 천씨는 “소설에 장르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장르소설의 일정한 관습과 규칙을 따른 건 아니고, 문학적 의미가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며 “진지한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걸 시도해봤다는 면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멋있는 척 폼을 잡지만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인 건달들 이야기다. 성인오락기 사업을 제안받은 인천 연안파 두목 ‘양 사장’은 바지사장으로 앉힐 인물로 ‘뜨끈이’를 떠올린다. 양 사장은 부하를 시켜 뜨끈이를 데려오던 도중 전남 영암의 조폭 ‘남 회장’ 일당에게 그를 뺏긴다. 한편 양 사장은 20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려 하는데 이를 노리는 일당이 한둘이 아니다. 그 사이 양 사장의 부하들은 경마장에서 말을 하나 훔치는데 알고 보니 가격이 35억원이나 하는 종마다. 뜨끈이, 다이아몬드, 말을 두고 모여든 조폭들이 양 사장을 중심으로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조폭 누아르 장르에서 흔히 보이는 무거운 분위기는 없다. ‘단순 무식한’ 인물들이 모여 북적대며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빚어내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소설의 문체와 인물들의 대사도 우스워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천씨는 “뒷골목 건달들의 잡다한 얘기가 머릿속에 있었는데 인터넷 연재를 하면서 이런 얘기가 적당하겠다 싶어서 소설로 쓰게 됐다”며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오랫동안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이 소설을 나중에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