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출가 헤닝 브로크하우스가 연출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장면. 45도로 비스듬히 들어올려진 거대한 거울이 등장인물과 무대를 비춘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독일 연출가 헤닝 브로크하우스가 연출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장면. 45도로 비스듬히 들어올려진 거대한 거울이 등장인물과 무대를 비춘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무대는 텅 비어 있다. 무대에 거대한 거울 하나가 올려져 있을 뿐이다. 가로 22m, 높이 12m, 무게 1.5t에 달하는 거울은 공연이 시작되면 음악과 함께 서서히 올라간다. 거울이 45도로 들어 올려지면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반사된다. 관객은 위에서 무대를 바라보듯 등장인물과 바닥을 뒤덮은 여러 가지 이미지의 작화막(그림이 그려진 막)을 보게 된다.

다음달 8~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거울을 이용한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귀에 익숙한 ‘축배의 노래’와 함께 나오는 첫 연회 장면은 더욱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비친다.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상처와 아픔은 관객에게 가깝고도 애절하게 전달된다.

세종문화회관과 한국오페라단이 공동 제작하는 이 공연은 독일 출신 오페라 거장 헤닝 브로크하우스(사진)의 ‘거울 트라비아타’ 버전이다. 브로크하우스는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객들은 거울을 통해 마치 커튼 뒤에서 훔쳐보듯이 평소에 볼 수 없는 장면까지 관찰하게 된다”며 “스토리 자체가 크게 부각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울 트라비아타’

1.5t 거울에 비친 매춘부 삶…설치미술 같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주세페 베르디의 대표작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사교계 여인 비올레타와 부르주아 남성 알프레도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다. 세계에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오페라 중 하나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하고 있어 오페라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페라인 만큼 연출가가 차별화하기 어려운 작품으로도 꼽힌다.

브로크하우스는 ‘거울 트라비아타’라고 불리는 독특한 무대 구성으로 이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의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에서 올린 초연 무대는 거울을 이용한 독특한 연출과 화려한 색상으로 큰 충격을 안기며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번 서울 공연은 당시 무대장치와 의상, 소품을 그대로 가져와 초연 무대를 재연한다.

브로크하우스는 “24년 전 초연 당시 관객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공연장에 들어왔다가 텅 빈 무대를 보고 받은 신선한 충격을 한국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은 거울을 통해 법정에 선 증인처럼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를 바라보게 된다”며 “관객이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건축적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상징적 요소에만 오롯이 집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막이 끝날 무렵, 비올레타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에서 이런 효과는 극대화된다. 거울이 90도로 완전히 들어 올려지는 동시에 바닥 위 작화막들이 사라진다. 관객들은 텅 빈 무대와 함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세계 정상급 성악가 무대에

이번 공연엔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비올레타 역은 소프라노 글래디스 로시와 알리다 베르티, 알프레도 역은 테너 루치아노 간치, 제르몽 역은 바리톤 카를로 구엘피가 맡는다. 로시는 1992년 초연 무대에서도 비올레타를 맡았다.

그는 “1막부터 3막까지 막마다 비올레타의 모습이 다르다”며 “세 명의 여성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같으면서도 다른 비올레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연주는 세바스티아노 데 필리피가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는다. 3만~28만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