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울 밑에 맨드라미
목 길게 빼고 혼자 붉고

매미 울음 끝에
파랗게 질리는 하늘

댓돌 위
검정 고무신
그 단정한
하얀 둘레


-시집 《내가 사랑하는 여자》(책 만드는 집) 中

시인의 눈은 자상하고 섬세하다. 일상에서 무시로 다가오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정밀(精密)하게 관찰한다. 울타리 밑의 맨드라미, 파란 하늘, 댓돌 위의 검정 고무신 등은 우리의 농촌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사물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무관심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일상의 것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관조하면 그 속에 숨어 있던 의식이나 정서가 드러난다. 시는 이러한 사물 속의 의식이나 정서를 알아차려 언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적시된 향토적 사물들의 언어는 무엇일까. ‘그리움’이다. 시인은 이러한 사물들에게도 그리움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붉고 파랗고 하얀 색채의 상징어로 표현하고 있다.

문효치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