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문학'에 한방 먹인 노벨상…문학은 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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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역확대 vs 기존 문학 무시
문화계 반응 극과 극이지만 "교조주의 벗어나야" 자성론 커져
밥 딜런 유일한 국내 자서전, 주문 몰려 1만부 추가 인쇄
음반도 대부분 품절사태
문화계 반응 극과 극이지만 "교조주의 벗어나야" 자성론 커져
밥 딜런 유일한 국내 자서전, 주문 몰려 1만부 추가 인쇄
음반도 대부분 품절사태
‘문학의 지평 확장이냐, 기존 문학에 대한 무시냐.’ ‘노벨문학상의 혁신이냐, 인기영합주의냐.’ 미국 팝가수 밥 딜런(사진)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세계적으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찬반 논쟁이 뜨겁다. “문학의 엄숙주의를 깨는 스웨덴 한림원의 파격”이라는 긍정론과 “문학과 다른 영역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문학 영역 넓혔다” vs “혼란 초래”
딜런의 수상을 환영하는 이들은 “놀랍고 의외이긴 하지만 문학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소설가)는 “(이번 결정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세계인에게 던지면서 문학이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원래 밀접했던 시와 음악성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스웨덴 한림원은 사회의 모순에 대해 저항적인 목소리를 낸 작가에게 문학상을 줘 왔다”며 “딜런의 노래 가사는 충분히 문학적인 품격을 갖췄고 내용도 노벨상 시상 방침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성석제 씨는 “딜런의 음악은 사회에 경종을 울려왔고 문학적으로도 성취가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노래 가사가 문학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시와 노래가 원래 한몸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시에는 멜로디가 내재해 있을 뿐”이라며 “반대로 멜로디를 위한 글(가사)이 그대로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김곰치 씨는 “가사는 연주음과 따로 놀 수 없고 시간(길이)의 한계도 받아야 하므로 시만큼 훌륭하기는 어렵다”며 “(딜런의 수상은) 세계 문학계가 난데없이 당하는 봉변이요, 어떤 이들은 모욕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시인은 “수상 발표 직후 당황스럽다는 의미에서 아무 설명 없이 ‘?’를 트위터에 올려놓은 문인이 많았다”며 “국내 대중음악 중에서도 가사가 시적인 게 많은데 이들을 다 노벨문학상 후보라고 할 게 아니면 스웨덴 한림원은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대중과 소통해야” 문단 자성론
문단 일각에서는 갈수록 대중과 사회로부터 멀어져가는 최근 문학 풍조를 돌이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곽효환 시인은 “최근 작품들을 보면 시는 점점 난해해지고 소설은 시대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적인 문제 속으로만 빠져들고 있다”며 “20세기엔 문학이 ‘시대 정신의 지형도’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문학의 교조적 권위와 전통적 관념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폭넓게 교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문학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스웨덴 한림원이 이번에 의견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달자 시인은 “요즘엔 너무 어려운 시가 많다. 시인 혼자만의 도취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둔 결정”이라며 “문인으로서도 자신의 문학이 어떻게 가고 있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 “들어볼까”
올해 ‘노벨문학상 특수’는 음원·음반 사이트에서 먼저 일고 있다. 딜런이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자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멜론에서 ‘노킹 온 헤븐스 도어’와 ‘블로잉 인 더 윈드’가 이날 오전 각각 급상승 차트 1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음반 판매량도 늘었다. 예스24에선 지난 12일 1장 팔렸던 음반이 수상 발표 이후 137장이나 판매됐다. 현재 국내 음반사이트에서 딜런의 음반은 대부분 동났다.
서점가에서도 수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유일한 딜런의 저서인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인터넷교보문고에서 수상 직후부터 14일 오후 3시까지 154권, 예스24에선 191권 팔렸다. 하루 전만 해도 단 1권씩만 팔렸던 책이다. 이 책을 출간한 문학세계사는 부랴부랴 중쇄에 들어갔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기획실장은 “재고 200여권이 아침 일찍 소진됐고 1만부를 추가로 인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문화계 반응
긍정론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적 품격 갖췄고 시대적 고민 담아 적격”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의 영역을 넓힌 의미 있는 시도”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 “문학은 대중·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
부정론
김민정 시인 “문학의 경계 모호하게 만들어 혼란 초래”
정호승 시인 “멜로디를 위한 글(가사)이 그대로 시라고 보긴 어려워”
김곰치 소설가 “가사는 연주음과 어울려야 하고 길이 제약…시만큼 훌륭하기 어려워”
양병훈/선한결 기자 hun@hankyung.com
“문학 영역 넓혔다” vs “혼란 초래”
딜런의 수상을 환영하는 이들은 “놀랍고 의외이긴 하지만 문학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소설가)는 “(이번 결정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세계인에게 던지면서 문학이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원래 밀접했던 시와 음악성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스웨덴 한림원은 사회의 모순에 대해 저항적인 목소리를 낸 작가에게 문학상을 줘 왔다”며 “딜런의 노래 가사는 충분히 문학적인 품격을 갖췄고 내용도 노벨상 시상 방침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성석제 씨는 “딜런의 음악은 사회에 경종을 울려왔고 문학적으로도 성취가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노래 가사가 문학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시와 노래가 원래 한몸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시에는 멜로디가 내재해 있을 뿐”이라며 “반대로 멜로디를 위한 글(가사)이 그대로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김곰치 씨는 “가사는 연주음과 따로 놀 수 없고 시간(길이)의 한계도 받아야 하므로 시만큼 훌륭하기는 어렵다”며 “(딜런의 수상은) 세계 문학계가 난데없이 당하는 봉변이요, 어떤 이들은 모욕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시인은 “수상 발표 직후 당황스럽다는 의미에서 아무 설명 없이 ‘?’를 트위터에 올려놓은 문인이 많았다”며 “국내 대중음악 중에서도 가사가 시적인 게 많은데 이들을 다 노벨문학상 후보라고 할 게 아니면 스웨덴 한림원은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대중과 소통해야” 문단 자성론
문단 일각에서는 갈수록 대중과 사회로부터 멀어져가는 최근 문학 풍조를 돌이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곽효환 시인은 “최근 작품들을 보면 시는 점점 난해해지고 소설은 시대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적인 문제 속으로만 빠져들고 있다”며 “20세기엔 문학이 ‘시대 정신의 지형도’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문학의 교조적 권위와 전통적 관념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폭넓게 교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문학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스웨덴 한림원이 이번에 의견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달자 시인은 “요즘엔 너무 어려운 시가 많다. 시인 혼자만의 도취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는 데 방점을 둔 결정”이라며 “문인으로서도 자신의 문학이 어떻게 가고 있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 “들어볼까”
올해 ‘노벨문학상 특수’는 음원·음반 사이트에서 먼저 일고 있다. 딜런이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자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멜론에서 ‘노킹 온 헤븐스 도어’와 ‘블로잉 인 더 윈드’가 이날 오전 각각 급상승 차트 1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음반 판매량도 늘었다. 예스24에선 지난 12일 1장 팔렸던 음반이 수상 발표 이후 137장이나 판매됐다. 현재 국내 음반사이트에서 딜런의 음반은 대부분 동났다.
서점가에서도 수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유일한 딜런의 저서인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인터넷교보문고에서 수상 직후부터 14일 오후 3시까지 154권, 예스24에선 191권 팔렸다. 하루 전만 해도 단 1권씩만 팔렸던 책이다. 이 책을 출간한 문학세계사는 부랴부랴 중쇄에 들어갔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기획실장은 “재고 200여권이 아침 일찍 소진됐고 1만부를 추가로 인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문화계 반응
긍정론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적 품격 갖췄고 시대적 고민 담아 적격”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의 영역을 넓힌 의미 있는 시도”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 “문학은 대중·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
부정론
김민정 시인 “문학의 경계 모호하게 만들어 혼란 초래”
정호승 시인 “멜로디를 위한 글(가사)이 그대로 시라고 보긴 어려워”
김곰치 소설가 “가사는 연주음과 어울려야 하고 길이 제약…시만큼 훌륭하기 어려워”
양병훈/선한결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