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1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하는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을 안무한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43·사진)의 말이다. 이원국 등과 함께 ‘1세대 스타 발레리노’로 꼽히는 김 교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동양인 최초 솔리스트로 활약했다. 부상당한 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안무를 시작했다.
그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춤을 만들어왔다. ‘워크(Work)’ 연작과 ‘빛, 침묵, 그리고…’ 등 지금껏 선보인 6편의 작품은 주로 삶과 죽음의 문제나 사회적인 이슈 등을 다뤘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신작은 왕따, 지나친 경쟁 강요, 비리, 성매매나 동물 학대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다룹니다. 매일같이 대중매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들려오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했어요. 시대를 반영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공연은 2부로 구성했다. 전반부는 직설적인 안무와 보도 영상. 음성 효과를 활용해 현실 속 문제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어설프게 에두르기보다 ‘본격적으로 불편한’ 무대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왕따가 주제인 무대에선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다 투신자살한 학생을 다룬 뉴스가 배경으로 쓰인다. 무대에선 무용수 두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반복적으로 짓누르듯 움직인다. 갑자기 누르던 이 중 하나가 눌리는 사람이 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카운터테너 이희상 씨도 무대에 함께 선다.
“무용수들의 몸짓에 카운터테너의 파고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더해져 관객들의 감정을 몰아갈 겁니다. 어떤 관객은 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버릴지도 몰라요. 사실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보기 불편한 부분 뒤에는 추상적인 영상과 몸짓으로 관객을 위로하는 무대가 이어진다. 앞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 굿판 같은 대목이다. 김 교수는 “막연한 해피엔딩 대신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한예종 제자 무용수 10명이 무대에 선다. 몇몇은 연습 과정이 어렵다고 했단다. “한창 놀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둡고 무거운 주제로 춤을 추라고 하니까 힘들어하죠. 그런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표현력이 확 늘어난 게 보여요. 외국 발레단은 10대 중후반부터 이런 교육을 합니다. 철학과 인문학을 배우고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죠. 이런 학생들은 군무만 추더라도 춤에서 더 깊은 맛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안무작에서도 ‘깊은 맛’을 내려 노력 중이다. 최근엔 프랑스의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인 파리 콘서바토리에서 외부안무가로 초청됐다. 지난해 초연한 발레 소품 ‘레 무브망(Les mouvements)’를 오는 12월 프랑스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김용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용수로서의 삶이 더 익숙했는데, 점점 안무가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를 춤으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02)2098-2985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