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총체적 공급 과잉에 빠져 있다. 금리 인하와 같은 거시적, 전통적 내수 진작 수단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노인들은 수명이 얼마나 연장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소비를 함부로 늘리지 못한다.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청년들은 결혼도, 출산도 마냥 미루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내수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해법은 일자리에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야 한다. 일자리가 생겨야 소비도, 결혼도, 출산도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991년 광공업이 국민에게 제공한 일자리는 516만개에 달했다. 2015년에는 450만개로 66만개 줄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외국에 공장 11개를 지은 지난 20년 동안 국내에는 자동차 공장 하나 지어지지 않았다. 고용 비중이 큰 조선, 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허덕이고 있다.

돌파구는 서비스업이다. 의료, 교육, 금융, 정보통신기술(ICT), 콘텐츠, 법률, 회계, 디자인 등 이른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적어도 관광산업에서라도 작은 돌파구를 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관광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벤처 창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고는 하지만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세상은 그런 고급 일자리만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도 자기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찾도록 해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관광산업이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관광의 현주소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외국 여행지에 가보면 등산과 트레킹까지 소득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고 있다. 중국만 하더라도 관광지마다 돈을 벌 기회를 방치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반면 우리는 관광 인프라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수려한 풍광을 지닌 국립공원도 입장료조차 받지 않는다.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관광산업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은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은 나라, 돈을 벌고 싶지 않은 나라 같다.

관광을 내수의 해외유출이란 관점에서 보자. 지난해 우리는 해외에 나가서 250억달러를 썼다. 그중 37억달러는 교육연수 지급인데, 이 역시 수요의 해외유출이기는 하지만 빼기로 하자. 그래도 해외에서 쓴 돈이 213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 올 추가경정예산 11조원 중 내수 진작용 예산의 세 배 가까이 되는 큰 금액이다. 이 금액을 다 내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펠탑이나 베르사유궁전을 보러 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국내 관광으로 발길을 돌리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국내에도 하기에 따라 관광자원으로 키울 만한 소재가 적지 않다. 이 일부라도 내수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는 97억달러의 여행수지 적자를 봤다. 유학연수 수지 37억달러를 제외하더라도 60억달러(약 7조원) 적자다. 이 정도라도 내수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면 여행수지 적자를 면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적자를 다른 산업에서 냈다면 방치하고 있겠는가? 수입대체 방안이나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와도 백 번은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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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산업의 무한한 잠재력

다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 가능성을 짚어 보자. 인구 대국인 중국의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다. 2015년 한 해 국내를 찾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1323만명, 그중 중국인 관광객만 598만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런 속도라면 중국인 1인당 한 번씩 한국에 관광을 오는 데에 216년이 걸린다. 15세에서 65세까지를 관광을 다니는 기간으로 가정하고 50평생에 1인당 한 차례씩 한국에 관광을 오게 한다는 극히 소박한 목표만 달성해도 1년에 2750만명이 와야 한다.

물론 빈약한 관광자원을 감안할 때 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일생에 중국 관광을 가는 비율(1인당 평균 4.4회)만큼 중국인들을 한국에 오게 할 수만 있다면 1년에 1억2000만명 이상의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작년에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유치한 관광객이 725만명이었다. 이를 두 배만 늘려도 1500만명 유치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우리는 일단 10년 내에 5000만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환골탈태의 시작은 냉엄한 현실인식과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그랜드캐니언도 없고 장자제도 없다. 이구아수폭포도, 나이아가라폭포도 없다. 자금성도 없고, 베르사유궁전도, 피라미드도 없다. 큐가든도, 위즐리가든도 없다. 세계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 만들기라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칸, 니스, 모나코 등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는 남프랑스는 아를의 로마시대 원형극장, 님의 로마시대 수도교, 아비뇽의 교황청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적이 즐비하다. 이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보라색으로 들판을 뒤덮는 라벤더밭과 샤갈, 세잔, 마티스 등 화가들의 족적이 곳곳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이미 충분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새로운 어트랙션(attraction)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샤토 라 코스테라는 와이너리도 그랬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곳은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얕은 호수 위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작품을 배치했으며, 옛 샤토 건물은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든 뒤 한국화가 이우환의 최신 대작 6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포도밭 외곽의 숲 속 오솔길에는 세계적인 조각가, 건축가, 설치미술가들의 작품을 배치했다. 관람이 끝난 방문객 중 상당수가 샤토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와인도 사갔다. 제주도에도 다다오가 설계한 교회가 있어 관광명소가 되고 있지만 아무런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보는 관광’에서 ‘하는 관광’으로

관광자원에도 얼마나 멀리서 사람들을 오게 만들 수 있느냐, 몇 번이라도 다시 오고 싶게 만들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분명히 ‘급(級)’이 있다. 몇 번이라도 오게 하는 데에는 ‘보는 관광’보다 ‘하는 관광’이 더 유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등산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걷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퉈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등 걷는 길을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알프스에서는 오래전부터 몽블랑 둘레길이라는 것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유명한 스키, 산악 관광지인 샤모니와 몽블랑 주변의 경치 좋은 트레킹 코스를 하루에 5~6시간씩 보통 12일에 걷는 것인데, 해발 1500~2000m 이상의 고개를 넘나들기 때문에 경치가 환상적이다. 트레킹 코스 곳곳에는 산장시설과 식당, 카페테리아 등이 있다. 이층 침대가 죽 늘어선 방의 침대 하나에 하룻밤 50유로(약 6만1500원) 안팎을 받는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공용이다. 게다가 둘레길 주변 숙소 간에 짐을 날라주는 서비스도 잘 운영되고 있다. 곳곳에서 일자리와 소득이 만들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세계 어디서나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인프라다. 알프스에서는 일반 기차가 해발 1500m까지 올라간다. 그 이상 높은 곳에는 등반철도나 케이블카 등 특수 수송수단이 연결된다. 융프라우 등반철도 요금은 204스위스프랑으로, 우리 돈으로 23만원이 넘는다. 샤모니에 있는 몽블랑을 보러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60유로(약 7만5000원) 정도 된다.

중국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백두산(장백산)의 국립공원 입장료와 셔틀버스 비용이 295위안(약 5만원)이다. 황산은 입장료와 케이블카 요금으로 390위안(약 6만5000원)을 내야 한다. 황하석림 국가지질공원에 가면 입장료, 양가죽풍선 뗏목, 당나귀 마차, 케이블카 등으로 1인당 340위안(약 5만6000원)을 어김없이 쓰게 만든다.

반면 한국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은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국립공원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수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립공원을 환경부 소관으로 둬, 마치 자연환경 보전이 국립공원 지정의 1차적인 목표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관광인프라도 전무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몽블랑 둘레길이나 밀포드 트레킹, 중국의 차마고도 걷기 정도가 아니라 남미의 파타고니아 트레킹, 코카서스 산맥의 유럽 최고봉 옐브루스 산 트레킹까지 다니는 줄은 필자도 최근까지 몰랐다. 아마 정부 당국자도, 국회의원들도 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쓰고 다니는지도 모르면서 국내에서 관광수요를 진작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한 번씩 다녀오게 하면 어떨까 싶기까지 하다.

국적없는 관광상품 파는 한국

관광수입의 중요한 부분은 쇼핑이다. 특히 중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작년에 1인당 평균 2483달러(약 274만원)를 쇼핑에 썼다. 외래관광객 평균인 1673달러를 훨씬 웃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아직도 프랑스, 이탈리아의 명품을 팔아 주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은 통계가 없어도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서울 인사동은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다. 여기에서 팔리고 있는 관광기념품은 언제부터인가 점점 중국산으로 대체돼가고 있다. 한국에 온 중국인들에게 중국산 싸구려 관광기념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고급 기념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식품도 중요한 관광상품이다. 일본은 지방마다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술, 과자, 장아찌 등 가공식품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역마다 다른 식재료들이 있기 때문에 차별화에 가장 유리한 분야다. 하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대중식당에서 먹는 메뉴는 국적 불문의 음식이 대부분이다.

가장 부러운 것이 공연산업의 관광상품화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산업, 잘츠부르크 축제나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축제 같은 세계적인 공연산업 성공사례를 흉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한 윈난성의 ‘인상 여강’, 계림의 ‘인상 유삼저’, 항저우의 ‘인상 서호’, 무이산의 ‘인상 대홍포’, 그리고 ‘인상 해남도’ 같은 야외극 시리즈는 우리도 모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지역 경치의 백미를 배경으로 그 지역의 역사, 문화를 보여주는 이 공연들 중에 여강과 대홍포는 필자도 본 적이 있는데 돈이 아깝지 않았다.

잠재력 갉아먹는 공짜 관광

한국에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재들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줄불놀이는 그 독창성을 감안할 때 세계적인 공연으로 발전시킬 만하다. 그런데도 입장료를 한 푼 받지 않는다. 이런 식으론 잠재력을 다 발현할 수가 없다. 우리 스스로 값을 제대로 매기는 것이 관광자원 개발과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수천 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한꺼번에 유치해 치맥 파티나 삼계탕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 주체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라는 명분 아래 공짜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세계 어디에 이렇게 국민의 세금으로 공짜 식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지자체 간에 관광객 유치 경쟁을 벌이는 나라가 있는지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만큼 국내 식당의 매상을 날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돈을 더 벌 거리를 창출해 내지는 못할지라도 벌 수 있는 돈을 날려버리는 이런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해외 관광객을 유치해놓고도 보일 것도 없고, 팔 것도 없고, 즐기게 할 것도 없고, 먹일 것도 없는 ‘4무(無) 관광’이 바로 한국 관광의 민낯이다.

박병원 객원대기자는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행정고시(17회)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제1차관 △우리금융그룹 회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전국은행연합회장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현)

박병원 한경 객원대기자 bank092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