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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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직장인 L씨(46). 그는 매주 금요일 오전 5시에 경기 고양시에 있는 6홀짜리 골프장 원투쓰리GC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단출하게 혼자 라운드를 즐기기 위해서다.

물론 진짜 혼자 카트를 끌고 필드를 걸어다니는 ‘미국식 정통 나홀로 라운드’는 아니다. 대개는 각각 혼자 온 나홀로 골프족, 요즘 말로 ‘혼골족’과 합류한다. 차에서 내려 골프백을 클럽하우스 앞에 내려놓고 방문한 순서대로 4명 한 팀이 채워지면 라운드를 하는 방식이다. 4명 모두 모르는 사이인 만큼 인사만 간단히 나누는 것으로 티오프가 시작된다. 서로 통성명조차 할 일이 없으니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도 굳이 알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묻지마 골프’로도 불린다.

L씨는 “길어야 1시간20분이면 라운드가 끝나니 출근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며 “6개월 동안 거의 매주 골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혼밥’ ‘혼술’에 이어 혼자서 골프를 즐기는 혼골족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 4명을 사전에 모아서 가야 하는 팀골프에는 없는 장점이 많은 게 ‘혼골’이다. 우선 동반자 펑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 가면 언제든 함께 라운드할 동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백을 세워놓고 동반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캐디와 함께 단둘이 1인 라운드를 하는 기회도 심심찮게 얻는다.

비용도 저렴하다. 원투쓰리GC는 6홀 주중 2만6000원, 주말 2만9000원이다. 코스를 세 번 연속으로 돌아 18홀을 쳐도 많아야 8만7000원이다. 여기에 캐디피가 6홀당 1만원이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난해부터는 카트비(2000원)도 생겼다. 혼자 간 골퍼끼리 묶어주는 올림픽CC(경기 고양시)는 주말 9홀 라운드가 6만원이다. 제주에 있는 나인브릿지 퍼블릭도 1, 2인 라운드를 허용하고 있다.

원투쓰리GC 관계자는 “여름에는 5시만 돼도 꽉 차서 새벽에 1시간씩 기다리는 사례가 많았다”며 “요즘에는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10시부터 백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선 이미 ‘골프OOO’ ‘골프O’ 같은 혼골 카페가 혼골족 간 만남의 광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게시판에는 ‘강원도 명문골프장 7시 월요일 14만원 마지막 1명 구함’ 등 동반자를 찾는 글이 넘쳐난다.

경기 하남시에 사는 물류사업가 B씨(53)는 “하루나 이틀 전에 부정기적으로 올라오는 티타임을 잘만 찾으면 토요일에도 명문 회원제 골프장에서 10만원 미만으로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서로 모르는 골퍼를 한 명씩 모아 급하게 팀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파격 할인 혜택을 내걸기 때문이다. 이럴 땐 회원제라도 할인율이 50%를 넘는 게 보통이다.

나홀로 중년 여성 골퍼도 적지 않다. 대전에 사는 주부 K씨(51)는 공무원인 남편이 출장을 갈 때마다 조인 골프를 즐긴다. 그는 “대개 또래 주부와 조인해서 치지만 20~30대 직장인 청년들과 라운드할 때도 많다”며 “혼자서만 레이디 티를 쓰는 게 미안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 나눠주면 좋아한다”고 말했다.

골프업계에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혼골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혼골족 간 골프 라운드를 주선하는 맨날골프의 박수철 대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골프를 즐겁게 치는 조인 라운드가 보편화된 미국처럼 국내에도 n분의 1 골프시대가 빨리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