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실 꽉 찬 ‘란파라치’ 학원 > 서울 서초동에 있는 ‘란파라치’ 양성학원에서 수강생들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무료 공개 특강’을 듣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수강생이 크게 늘고 있다. 연합뉴스
< 강의실 꽉 찬 ‘란파라치’ 학원 > 서울 서초동에 있는 ‘란파라치’ 양성학원에서 수강생들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무료 공개 특강’을 듣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수강생이 크게 늘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에선 환자 보호자로 위장하면 됩니다. 결혼식장 축의금 봉투는 이름만 적고 액수를 적지 않는지 유심히 보세요.”

26일 서울 교대역 근처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양성학원에서 열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특강’의 한 장면이다. 중장년층 30여명이 빼곡히 들어선 강의실에서 문모 원장은 “공익신고로 돈을 벌 수 있는 100가지 이상의 노하우가 있다”고 했다.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고급 음식점과 골프장, 병원, 결혼식장 등지에 신고 포상금을 노린 란파라치가 몰리겠지만 이들이 실제 포상금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내부자’들 모집하는 란파라치 학원

란파라치가 노리는 대상은 400만명에 달하는 공직자 및 공무수행사인(私人)들이다. 직무와 연관된 사람과 3만원이 넘는 음식을 먹거나 5만원이 넘는 선물 또는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현장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고발인에게 포상금으로 최대 2억원, 보상금은 최대 30억원(국고환수액 기준)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 원장의 ‘노하우’에 따르면 란파라치의 제1 표적은 공무원이다. 각 관청 사무실 앞에 붙은 좌석 배치표를 통해 공무원의 얼굴과 이름, 직책 등을 확인한 뒤 추적하라는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그는 “공직자들이 비싼 밥 먹으면서 흥청망청할 때 우리는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세종시와 서울 광화문 일대, 구청과 학교 주변 고급 식당을 예의주시하라”고 했다. “예약자 이름과 영수증 등을 쉽게 확보하려면 식당 종업원과 미리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식당뿐만 아니라 병원도 란파라치들의 ‘영업장’ 중 한 곳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병실을 빨리 확보해달라’는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간 환자나 보호자로 위장한 란파라치들의 동영상 카메라에 찍힐 공산이 크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오가는 부조금도 감시 대상이다.

란파라치 학원의 1순위 영입 대상은 민간 대기업 및 공기업 등에서 갓 퇴직한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기업들은 운전기사, 비서 등 임원의 동선을 꿰고 있는 이들이 자발적 란파라치로 변하지 않을까 ‘집안 단속’에 들어갔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최근 퇴직 예정자 한 명이 김영란법을 거론하며 ‘퇴직금을 더 챙겨주지 않으면 회사가 하는 일 중 위법 소지가 있는 행위를 신고할 것’이라고 협박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신고포상금 받기 쉽지 않을 듯”

란파라치가 넘쳐나더라도 이들이 손에 돈을 쥐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고발인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3만원이 넘는 식사 접대라고 가정하면 고발인은 식사 영수증과 당사자 이름·직책 등을 확보해야 한다. 정교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란파라치가 식당 종업원과 짜고 영수증을 재발급하면 거꾸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수사기관이 란파라치들이 낸 증거의 효력을 얼마나 인정하느냐다. 공익 목적이 크다고 판단하면 추가 수사를 통해 검찰 기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고발 내용을 토대로 기소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더라도 란파라치가 포상금이나 보상금을 받기는 쉽지 않다. 포상금은 피의자가 재판에서 과태료 확정 판결을 받아야 고발인에게 지급한다.

검찰 출신인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수사 인력 부족 등 현실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건’이 아닌 이상 시민단체나 란파라치 등의 무차별적 고발에 검찰이 일일이 나설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용/마지혜/고윤상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