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사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고 짜증이 나요.”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열 명 중 일곱이다. 음식 준비와 성묘, 손님맞이 등의 압박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주부도 20~30%나 된다. 차례(茶禮)는 술 대신 차(茶)만 올리는 약식 제사다. 그만큼 간소해야 하는데 현실은 딴판이다.

조상의 기일마다 지내는 제사(祭祀)는 더하다. 과거 양반집에선 한 달에 서너 번씩 제사상을 차렸다. 4대조뿐만 아니라 공적이 큰 인물들은 영구히 제사를 지냈기에 연간 48회를 넘기도 했다. 산 사람 입에 풀칠하기 버거울 때조차 죽은 조상을 위해 장리빚을 내야 했다. 장남에게 유산의 3분의 2를 몰아주는 것도 제사 비용 때문이었다.

왕실은 더했다. 종묘를 비롯해 사흘에 한 번꼴로 제례를 올렸다. 백성의 등골이 휘었다. 왕가의 혈통과 초월적 권위를 과시하는 의식이었으니 예법도 까다로웠다. 세조 이후 ‘제왕은 하늘, 제후는 산천에 제사지낸다’며 환구단(원구단) 천제(天祭)를 없애는 등 사대의식까지 얽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주자 가례(家禮)를 둘러싼 논쟁으로 피를 부르기도 했다. 허례허식이 낳은 제의(祭儀)의 비극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유교 종주국이라는 중국조차 작은 위패 앞에 다과를 놓고 추모한다.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그마저 사라졌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도 가족이 모여 간소한 음식으로 고인을 기린다. 우리처럼 제사 음식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지 않는다. 절에서 향을 피우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중국 중추절(中秋節)도 월병을 나눠 먹으며 달에게 소원을 비는 정도다. 일본의 오봉(お盆) 역시 간단한 과일과 소면 등으로 소박하게 지낸다. 프랑스에서는 가을 명절인 투생(Toussaint·모든 성인의 축일) 때 고인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추억을 되새긴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페르 라셰즈, 몽마르트르 공원묘지엔 꽃다발이 가득하다.

가톨릭과 개신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 고인을 추모하기는 하지만 한상 가득 차리는 제사는 없다. 정교회도 제사 대신 추도식, 기도, 성찬 봉헌 등으로 예를 차린다.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도 축제에 가깝다.

이젠 우리도 달라질 때가 됐다. 겉치레 위주의 제사·차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가족이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며 계절 음식을 나눠먹는 즐거움은 살리되, 고답적이고 전근대적인 제례의 굴레는 벗는 게 옳다. 가족 갈등과 부부 불화, 심신 피로, 우울증도 결국은 ‘몸에 맞지 않는 옷’ 때문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