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100일 전쟁’이 본격화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도진보 노선을 계승한 클린턴이 ‘유리 천장에 가장 큰 금을 내고’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승부수가 성공할지 관심이 뜨겁다.

클린턴은 이상적 현실주의자로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다. 오바마가 도입한 건강보험·금융 개혁을 지속하고 중산층 복원과 성장동력 창출에 역점을 둔다. 부자 증세, 최저임금 인상, 공립대학 등록금 면제를 강조한다. 점진주의적 혁신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며 오바마 없는 오바마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미국인의 분노와 불안을 자극한다. 이민, 테러, 범죄 등으로 미국이 ‘한밤중’에 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진단한다. 자신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한다.

이민에 대한 생각도 천양지차다. 트럼프는 출생시민권제를 비판하고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추방과 무슬림 입국 금지를 부르짖고 있다. “중국이 우리를 쓰러뜨리려 한다”며 중국 때리기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를 주장한다. 클린턴은 시민권 부여를 허용하는 이민법 개혁을 지지하며 불법 체류자에 대한 관용을 강조한다.

두 후보의 경쟁은 어찌될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7~8%가량 앞서 있다. 그러나 아직 후보를 정하지 않은 부동층이 10%를 넘고 내달 26일부터 시작하는 세 차례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선전할 경우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합주(州) 싸움이 승패를 좌우한다. 과거 여섯 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18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승리해 24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공화당은 13개 주에 102명이다. 백인 근로자층이 두터운 중부 쇠락주에서 트럼프가 얼마나 선전하느냐가 관건이다. 트럼프로서는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가 중요하다. 선거인단이 각각 18명, 20명, 29명에 달한다. 지난 열 번의 대선에서 예외 없이 오하이오 당선자가 승리했다. 펜실베이니아는 지난 여섯 번의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긴 적이 없다.

백인 표의 향배가 관심거리다. 백인 유권자 비중은 69%로 4년마다 2%포인트씩 떨어졌다. 학위 없는 유권자 비율은 44%로 트럼프의 핵심 기반이다. 7월까지 평균 57% 지지율을 기록했는데 51% 선까지 떨어졌다. 클린턴의 평균 34%보다는 높지만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공화당 지지 기반인 군심(軍心)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포로 경력과 이라크 전사자 후마윤 칸 가족 비하 발언 등으로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 군 기지 지역 민심이 싸늘해지고 있다. 급기야 트럼프는 “막말을 후회한다”고 처음으로 사과했다. 흑인 유권자의 반(反)트럼프 정세도 심각하다. 2008년 존 매케인은 4%, 2012년 밋 롬니는 6%를 얻었다. NBC·월스트리트저널·메리스트 조사에 따르면 흑인 근로계층이 많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에서 흑인 지지율은 1%에 불과하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사회 불안이 커진다는 인식이 높아지면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먹혀 들어갈 소지가 크다. 트럼프가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도 불안감에 호소하려는 전략이다.

지난 7월 25만5000명, 지난 6개월 월평균 18만9000명 고용 창출, 실질임금 연 2.6% 상승 뉴스는 클린턴에게 커다란 호재다. 4.9%의 낮은 실업률은 경기 회복이 정체되고 있다는 공화당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경제학자 재러드 번스타인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아니라 일자리와 임금”이라고 강조한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말처럼 “이번 대선은 누구를 더 용납할 수 없느냐의 싸움”이다. 정직성을 의심받는 클린턴과 ‘과대망상론자’ 트럼프의 대선 결과에 따라 지구촌 운명이 크게 출렁일 것이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