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바이오·제약 육성, 미시정치적으로 접근해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지만, 일자리 대책을 세우느라 정책 역량을 소진하면서 일자리 창출은 늘 ‘구두선’에 머물렀다. 우리 정책 당국의 치명적 약점은 멀티태스킹 능력 부재다. 현실은 정책 과제의 동시 수행을 요구하지만, 당국은 한 번에 하나씩이다. 구조조정, 추가경정예산이 현안이 되면 일자리 창출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정책 사고에서 사라진다. 입법이 막히면 모든 것이 멈춘다.

영국 애덤스미스연구소장이었던 매슨 피리는 《미시정치》를 통해 영국의 히드와 대처 총리가 같은 보수당 소속임에도 대처만 성공한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성공하는 정책 만들기’ 조건으로 문제를 잘게 쪼개 미시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작은 열매’를 국민들이 누리면 개혁은 스스로 추동된다는 것이다. 대처의 정책을 살라미(이탈리아식 소시지의 하나)를 얇게 썰어 빵에 끼우는 기술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는 문제를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그 사례다. 19대 국회에서 야권은 정파적 이해 등을 따져 법안에 반대했고 국회선진화법을 활용해 입법을 저지시켰다. 하지만 여권은 정면 돌파를 시도해 우회로를 만들지 않았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 통과되면 일자리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 일자리 창출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으로 여겼다면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바이오·제약 분야에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의 규제 스탠더드 정비와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2015년 한미약품의 8조원 규모 기술 수출 등 한국 제약산업에 대해 높아진 믿음과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약가 개선 및 의약품·의료기기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보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신약개발 1·2상만 적용하던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상을 3상까지 확대하고 복지부도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된 ‘글로벌 혁신 신약개발’에 대해 대체 약제의 10%를 가산하는 약가 우대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또 유망 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진입과 제품화를 통해 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차세대 수출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맞는 정책 방향이지만 인센티브를 보강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글로벌 진출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국내개발 신약에 국한된 혜택은 국내 산업 위주의 편향된 프레임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의약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1.5~1.8%의 미미한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하면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미래 먹거리산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약개발은 조(兆) 단위의 막대한 자본과 10년 이상의 긴 개발 과정을 요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제약산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부를 창출하려면 ‘긴 호흡과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은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개발 신약에 유리하게 글로벌 도입 신약을 차별하는 것은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내 제약시장의 미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근시안적인 이익 보호보다 공정한 보상과 혁신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 유치도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의 ‘국가 바이오클러스터’ 전략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인력과 기술, 그리고 인프라 측면에서 싱가포르와 비교가 되지 않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정책자원화하지 않으면 잠재력은 잠재력일 뿐이다.

이젠 정부 의지대로 산업이 육성되지 않는다. ‘7대 바이오 강국’ 같은 슬로건 이전에 ‘경쟁과 보상’이 작동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시장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며 일자리도 생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