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교토 장수기업들 "오늘의 파괴는 내일의 전통"
일본의 혼수용품 전문점 겐다는 771년에 창업한 교토 최고(最古)의 가게다. 종이공예, 칠기 등 일본 내에서 가장 전통적인 혼수용품을 생산한다. 이 상점과 연결된 전문 작가가 하나하나 손으로 최상의 상품을 만든다. 프랜차이즈를 통해 수많은 지점을 거느린 다른 혼수용품점과 달리 자그마한 가게 하나가 전부다. 그 희소가치 때문에 겐다의 혼수용품은 일본에서 가장 비싸다. 최상의 품질, 최고의 가격 전략을 유지하며 1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교토에는 이처럼 1000년 이상 된 가게가 6개 있다. 200년 이상 된 가게는 1600개에 달한다. 100년 이상 된 가게는 너무 많아 집계가 안 될 정도다. 그들은 오랫동안 장사해오면서 ‘교토식 상법’을 개발했다. 세라믹 필터의 강소기업 교세라, 세계적 게임업체 닌텐도, 일개 연구원이 노벨상을 탄 시마즈제작소, 일본전산, 와코루, 호리바제작소 등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기업들이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

《어떻게 지속성장할 것인가》는 논픽션 전문작가인 홍하상 전국경제인연합회 교수가 오래된 교토 상점들을 소개하며 지속성장의 비결을 밝힌 책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불황에도 교토 상인들이 흔들림 없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는지도 분석한다.

교토 장수기업은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400년 된 초밥집 이요마타는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고등어초밥으로 승부한다. 비린내가 강한 고등어가 초밥으로 거듭날 때까지 수백 년간 연구가 축적됐다. 제주산 고등어 30㎝짜리 최상품만 사용하고, 쌀은 맛, 향기, 수분의 정도 등을 판단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360년 된 양념가게 시치미야는 태풍이 와서 직영 농장의 작황이 좋지 않자 고객에게 나쁜 물건을 팔 수 없다며 4개월간 문을 닫았다. 370년 된 두부요리 가게 오쿠단은 하루 30인분만 만든다. 최고급 재료를 완전 수작업으로 딱 30명만의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한다. 1016년 된 떡가게 이치와는 24대째 최상의 숯불로만 인절미 구이를 생산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교토 상점들이지만 구시대의 것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을 지키되 끊임없이 혁신한다. 379년 된 청주회사 겐케이칸은 ‘매일 새롭게 제조방법을 혁신하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맛있는 청주를 생산하기 위해 좋은 누룩을 얻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1200년 된 부채가게 마이센도는 새로운 감각의 부채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스스로 평한다. 장인의 손으로 3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 창작 부채를 제작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늘 첨단 디자인을 추구한다.

300년 된 요정 이치리키차야는 다른 요정과 달리 음식을 외부에 맡긴다. 한 달에 두 번씩 전체 메뉴를 바꾸려면 막대한 노력과 노하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 식당에 맡기는 것이 음식도 훌륭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음식 아웃소싱은 교토 기업들의 현대적 경영기법에서 배운 것이다.

300년 된 금박가게 호리킨 박분은 식기, 회화제품, 칠기 등 전통제품에 금박을 입히는 가게로 출발했다. 지금은 컴퓨터, 자전거, 골프공까지 금박을 입혀 판다. 화장수, 입욕제 등 금가루가 들어간 제품도 만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오늘의 파괴는 내일의 전통이 된다”는 교토 상인들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