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등 1000여개 한국 기업 진출
2년 전 겨울 찾은 베이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방진마스크부터 지급받았다. 옌청은 공기가 깨끗했다. ‘동방의 습지도시’를 브랜드로 내세울 만했다.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수변(水邊)에 드리운 버드나무와 온난대 기후 식물들이 남방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작은 공항에 내려 회의가 열리는 옌청시 영빈관으로 향했다. 왕복 8~10차선의 넓은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합작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한 기반 인프라다. 거리에는 ‘중국 제4대 중외합작단지 중한염성산업원구’를 비롯해 ‘안전제일’ 따위의 문구가 적힌 한글 표지판이 심심찮게 보였다.
이동 중에 “옌청은 중한 협력의 모범이 되고 있다. 공항, 항구, 철도의 입체적 교통·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중한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심도시로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찬 안내원의 소개가 귀를 파고들었다. 숙소에 짐을 푼 한국 대표단은 일정 첫날부터 곧장 산업시찰에 나섰다. 옌청산업원구에 있는 둥펑위에다(동풍열달) 기아자동차 유한회사는 한중 합작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작년 연간 생산·판매량 61만5000대, 내년 매출은 100만대로 잡고 있다. 시내 여기저기서 K3, K5 등 큼직큼직한 기아차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이날 대표단이 둥펑위에다 기아차 제3공장을 찾은 시각은 오후 3시경. 하지만 공장 내부는 어두웠다. 조명은 작업구역을 제외한 통로만 비췄다. 전체 공정이 자동화된 탓이다. 대표단 관계자는 “작업자가 적어서 조명이 필요 없으니…”라고 귀띔했다. 대신 차체를 조립하는 로봇손의 커다란 기계음이 공장을 가득 채웠다.
공정 진행을 알리는 전광판 숫자가 쉴새없이 바뀌고 완료를 알리는 신호음도 줄기차게 들렸다. 차량 완성 단계의 일부 구역에서만 현지 생산직들이 마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20대 청년인 직원들은 8시간씩 2교대 근무하며 70만~8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대표단은 “인건비 위주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존 중국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현지 안내원에게 이것저것 현황을 캐묻는 국내 기업 관계자들도 여럿이었다. 기술과 임금 수준에서 동남아시아와 국내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 중국의 경쟁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방문한 중한산업단지기획전시관은 옌청의 현재와 미래비전을 요약해 보여줬다. 옌청은 작년 7월 중한염성산업단지 핵심구로 확정됐다. ‘산업도시로 기지개를 켠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수년 전 이곳을 찾았다는 국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옌청에) 공항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천지 개벽이란 말이 딱 맞는다”고 했다.
전시관의 안내 동영상은 옌청이 한중 산업협력의 모범임을 되풀이 강조했다. 우수한 투자 환경으로 산업원구에 1000여개의 한국 입주 기업을 유치했으며 투자 총액 50억 달러, 연간 매출 1000억 위안을 달성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80분 거리로 멀지 않은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이튿날(13일) 진행된 ‘한중 기업 비즈니스 상담회’도 활기가 넘쳤다. 영빈관 구룡홀에 마련된 27개 테이블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행사장은 공식 일정이 진행되는 3시간 내내 국내 기업과의 거래를 원하는 현지 바이어들로 북적거렸다. 주최측은 한국 27곳, 중국 70여곳의 기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기기를 취급하는 유니블(UNIBLE) 권길후 대표는 상담회장에서 “개별 접촉보다 이런 자리가 좋은 기회가 된다. 혈당 체크, 만보기 기능을 겸한 밴드형 스마트워치의 현지 유통업체를 찾고 있는데 반응이 괜찮아 중국 진출 계기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안동식 맥스웨이브 대표는 ‘코코 착용공기정화기’를 직접 착용하고 상담에 임해 이목을 끌었다. 공학박사인 그가 손수 개발한 제품이다. “위생적이고 입을 가리지 않아 운동할 때 편한 게 장점”이라고 소개한 안 대표는 “한 시간 동안 7~8개 현지 업체가 다녀갔다. 중국의 공기 문제가 심각해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고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틀어주며 제품을 소개하는 등 행사장은 시종일관 열띤 분위기를 유지했다. 대기석에도 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업체간 사전 접촉이 없었으나 현장에서 관심을 보인 끝에 거래로 이어지기도 했다.
13일 본회의에서 개최지 인사를 맡은 주커장 중국공산당 옌청시위원회 서기는 ‘한국과 일본의 친구들’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비즈니스를 독려했다. 그는 “옌청은 《수호지》가 탄생한 고장으로 자원과 이야기가 풍부한 곳이다. 국가 10대 발전도시로 선정된 만큼 적극적 개방협력으로 한일 친구들과 함께 발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 서기의 말처럼 옌청은 입주 국내 기업 관계자들에게 ‘한국성’ 같은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귀국길에 오른 대표단 관계자들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도시’란 옌청의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옌청=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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