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최고위험책임자·전 산업은행 회장)의 장기 휴직으로 AIIB 내 5개 부총재직 중 한국 몫을 잃게 되자 국토교통부가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졌다. 37억달러(약 4조3000억원)에 이르는 한국 AIIB 투자 지분을 국내 업체들에 우호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고위직을 잃으면서 공사 수주 실무를 담당할 국토부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져서다.

올 1월 출범한 AIIB의 총 자본금(예정)은 1000억달러. 그 가운데 한국 지분은 3.8%가량이다. 아직 납입을 한 것은 아니고 출자 약정 상태다.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자본금은 중앙아시아 동남아 등 아시아 전역의 도로·철도 등 교통인프라에 35%, 댐·해수담수화 등 수자원 관련 시설에 25%, 나머지는 플랜트·통신 등에 투자하는 걸로 돼 있다.

이런 투자의 최종 결정 권한은 AIIB 이사회가 갖는다. 부총재는 이사회의 핵심 멤버다. AIIB 직원이 투자 사업을 물색해 사업 범위와 비용 등에 관해 기본설계를 해오면 이사회가 해당 사업에 차관 형태로 자금을 빌려줄지, 특수목적회사 등에 출자할지, 아니면 채권 형태로 투자할지를 결정한다. 투자 방식이 정해지면 공사를 담당할 건설업체 등을 상대로 국제입찰에 부친다. 원칙적으로는 경쟁입찰이지만 AIIB 지분투자국 건설업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국내 건설업계엔 큰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세계은행(WB),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지원 사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 터라 AIIB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국토부는 AIIB 투자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적지 않은 준비를 해 왔다. 건설정책국 안에 전담 팀을 꾸리고 지난 4월엔 AIIB 핵심 멤버인 양단 조달국장, AIIB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자문단으로 활동 중인 왕웬 인민대 교수 등을 초청해 국제 세미나도 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당혹스럽다”며 “한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AIIB를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 우군(友軍)이 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재는 산업은행 회장 시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키웠다는 논란이 일자 휴직에 들어갔으며 AIIB는 홍 부총재가 맡고 있던 위험관리담당 부총재직을 국장급으로 낮췄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