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브렉시트 오독말고, 성장페달 밟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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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화된 EU에 등돌린 영국
일자리에 대한 절박한 고민의 결과
인기영합 떨치고 성장활로 찾아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일자리에 대한 절박한 고민의 결과
인기영합 떨치고 성장활로 찾아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제러미 리프킨은 《유로피언 드림》(2004)에서 유럽연합(EU)을 예찬했다.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획일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경쟁보다 협력을,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을 강조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여지없이 천박한 것으로 전락했다.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와 더불어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일각의 평가였다. 그런 EU를 영국이 발로 걷어찼다.
현지 언론도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Brexit)를 예상하지 못했다. 국내 한 전문가는 결국은 잔류하지 않겠느냐는 합리론이 강했는데 결과가 반대로 나온 것을 보면 국민 정서상 반감(反感)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잔류는 합리고 탈퇴는 감성이라는 폄훼다.
1960년대 이후 유럽국가들은 EU를 통해 유럽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공동체에 방점이 찍히면서 국가의 개별성은 희석됐고 국가 간 경쟁은 사실상 질식됐다. 대신 EU는 초법적 권력기구로서 권한과 조직을 키웠고 EU의회가 개입주의 규제를 양산하면서 EU는 사회주의화했다.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은 ‘합법적 약탈’을 꾀하려는 정치꾼으로 들끓었다. 미국이 극복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럽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브렉시트는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이 ‘EU사회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잔류냐 탈퇴냐의 선택 이면에는 자유냐 규제냐의 이념 전선이 형성돼 있었다. 브렉시트는 전통적인 자유주의 철학에 기초해 자기책임 원칙을 고수한 결과로 취해진 국민적 선택이기 때문에 철학과 정책의 결합이 브렉시트의 본질이다.
브렉시트를 신고립주의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보호무역주의로의 선회 가능성도 견강부회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무관세 자유무역의 기본 골격은 유지될 것이다. 난민 문제가 브렉시트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교역 자유화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 노동 순으로 전개된다. 사람까지 자유롭게 이동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은 일차적으로 해당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이민 규제를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신고립주의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EU 체제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탈출 이민을 통상적인 이민과 동일시할 이유는 없다.
브렉시트 직전 20대 국회 개원에 즈음한 3당 대표연설이 있었다. 3당 대표는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대기업 규제를 한목소리로 주창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의제는 언제나 그 의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은 새로 창당했고 20대 국회 개원에 즈음한 대표연설이기 때문에 원론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지만 새누리당은 다르다.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를 어떻게 깰 것인지를 말했어야 했다. 성장을 입에 올렸어야 했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에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짜달라는 잘못된 주문이다. 양극화는 부당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재벌 규제는 재벌을 옥죄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야당 대표는 ‘재벌 의사결정의 민주화’라는 말을 했다. 여당 대표는 “재벌 2, 3세들의 편법 상속, 불법적 경영권 세습을 막겠다”고 했다. 기업의 탈법은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하지만 모든 재벌을 악의 원천으로 여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영국은 브렉시트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을지언정 새로운 전기를 이뤘다. 브렉시트도 EU 체제 아래에서 일자리 창출이 여의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일자리 창출로 귀결된다. 하지만 우리는 일자리를 말하지만 구두선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일자리, 청년 할당제만 덩그러니 남는다. 논쟁은 없고 싸움만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정치 현실이다. ‘나침반 경쟁’이 없고 ‘속도 경쟁’만 있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다. 인기라는 모래성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성장 페달을 밟아야 한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현지 언론도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Brexit)를 예상하지 못했다. 국내 한 전문가는 결국은 잔류하지 않겠느냐는 합리론이 강했는데 결과가 반대로 나온 것을 보면 국민 정서상 반감(反感)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잔류는 합리고 탈퇴는 감성이라는 폄훼다.
1960년대 이후 유럽국가들은 EU를 통해 유럽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공동체에 방점이 찍히면서 국가의 개별성은 희석됐고 국가 간 경쟁은 사실상 질식됐다. 대신 EU는 초법적 권력기구로서 권한과 조직을 키웠고 EU의회가 개입주의 규제를 양산하면서 EU는 사회주의화했다.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은 ‘합법적 약탈’을 꾀하려는 정치꾼으로 들끓었다. 미국이 극복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럽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브렉시트는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이 ‘EU사회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잔류냐 탈퇴냐의 선택 이면에는 자유냐 규제냐의 이념 전선이 형성돼 있었다. 브렉시트는 전통적인 자유주의 철학에 기초해 자기책임 원칙을 고수한 결과로 취해진 국민적 선택이기 때문에 철학과 정책의 결합이 브렉시트의 본질이다.
브렉시트를 신고립주의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보호무역주의로의 선회 가능성도 견강부회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무관세 자유무역의 기본 골격은 유지될 것이다. 난민 문제가 브렉시트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교역 자유화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 노동 순으로 전개된다. 사람까지 자유롭게 이동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은 일차적으로 해당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이민 규제를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신고립주의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EU 체제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탈출 이민을 통상적인 이민과 동일시할 이유는 없다.
브렉시트 직전 20대 국회 개원에 즈음한 3당 대표연설이 있었다. 3당 대표는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대기업 규제를 한목소리로 주창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의제는 언제나 그 의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은 새로 창당했고 20대 국회 개원에 즈음한 대표연설이기 때문에 원론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지만 새누리당은 다르다.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를 어떻게 깰 것인지를 말했어야 했다. 성장을 입에 올렸어야 했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에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짜달라는 잘못된 주문이다. 양극화는 부당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재벌 규제는 재벌을 옥죄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야당 대표는 ‘재벌 의사결정의 민주화’라는 말을 했다. 여당 대표는 “재벌 2, 3세들의 편법 상속, 불법적 경영권 세습을 막겠다”고 했다. 기업의 탈법은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하지만 모든 재벌을 악의 원천으로 여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영국은 브렉시트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을지언정 새로운 전기를 이뤘다. 브렉시트도 EU 체제 아래에서 일자리 창출이 여의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일자리 창출로 귀결된다. 하지만 우리는 일자리를 말하지만 구두선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일자리, 청년 할당제만 덩그러니 남는다. 논쟁은 없고 싸움만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정치 현실이다. ‘나침반 경쟁’이 없고 ‘속도 경쟁’만 있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다. 인기라는 모래성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성장 페달을 밟아야 한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