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암스테르담선 17세기부터 공매도·선물거래를 했다
“투기꾼들은 입만 열면 오직 주식 얘기였다. 어딜 뛰어 나가면 주식 때문이었다. 어딘가 쳐다보고 있으면 주식을 보고 있는 거였다. 깊이 생각에 잠겨 있으면 주식 생각을 하는 거였고, 공부를 하면 주식에 대한 공부였다.”

미국 월스트리트나 여의도 증권가 이야기가 아니다. 16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발간된 책 《혼란 속의 혼란》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암흑이 되고 강둑에는 수시로 사형수가 매달려 있는 우울한 중세도시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주식 투자에 푹 빠져 있었다. 옵션, 선도거래, 호가, 리스크, 작전, 공매도 등 현대 증권가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시민들 입에서 줄줄이 나왔다.

네덜란드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데베이크 페트람은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에서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한 사상 최초의 증권거래소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당시 거래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기록을 파헤쳐 주식시장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했는지 재구성한다.

당시 이 증권거래소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주식만 거래됐다. 16~17세기 암스테르담은 해상 무역 중심지였다. 아시아로 출항한 배들은 값비싼 향신료를 싣고 돌아와 항해에 투자한 비용의 몇 배를 벌었다. 때로는 배가 풍랑에 뒤집혀 투자금을 날리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지분이 나뉜 법인 형태의 조직을 설립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이 법인들은 해상 전투를 치르기에 유리한 더 크고 통합된 동인도회사로 합쳐졌다.

1602년 회사 설립과 동시에 지분은 자유롭게 거래됐다. 회사에 대한 정보에 따라 가격은 오르내렸다. 배가 귀중품을 잔뜩 싣고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면 주가가 올랐다. 배가 난파됐다는 소문에는 주가가 급락했다. 작전세력들은 거짓 소문을 퍼뜨려 가격을 조작했다. 리스크를 회피하려고 선물거래가 현물거래보다 활발했다. 배당금은 지급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불리는 회사의 이사진을 비판하는 소액주주운동도 전개됐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