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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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기술 등 거시환경에서 유래하는 불확실성의 정도가 날로 커지고, 이와 연동해 고객 요구가 상시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시장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요구되는 것은 급변하는 환경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다.

최근 소위 ‘린(lean)’ 경영방식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데, 특히 ‘속도’와 ‘유연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린이란 용어는 198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자동차 연구 프로젝트에서 일본의 도요타 생산방식을 심층 연구한 결과를 설명한 보고서에서 연유했다. 당시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선풍을 불러일으킨 도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체의 활동을 낭비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줄여나가는 데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런 낭비 제거 활동의 기반에 깔린 일련의 경영철학을 ‘린’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요즘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는 린 경영방식은 위의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말하는 린보다 한층 진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가 에릭 리스가 2011년 자신의 창업 경험을 기반으로 제안한 내용을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낸 뒤부터 확산됐다. 리스는 창업 초기 기업들은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불필요한 활동을 최소화하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재빠르게 사업모델을 바꿔나가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도요타의 린경영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대기업의 한계로 지적되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고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삼성의 ‘스피드 경영’까지 벤치마킹할 정도로 심사숙고한 이멜트의 시선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고정됐고, 2012년 리스의 《린 스타트업》을 기본 모델로 한 ‘패스트 웍스(Fast Works)’란 GE식 속도경영 방식을 마련했다. 경영에 관한 한 모범사례로 불리는 GE가 린 방식을 도입한 이후 다른 많은 기업도 저마다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나름대로 린 경영방식을 채택했다.

스티브 블랭크는 2013년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논문에서 린 스타트업의 특성을 기존 경영방식과 대비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기존 경영방식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대기업의, 매우 체계적으로 짜인 경영 시스템을 지칭한다. 즉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한 시장분석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하며, 기능별로 역할이 분담된 조직에서 완벽한 자료를 토대로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한 뒤 빈틈없이 실행에 옮겨 계획한 대로 성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실패는 방지되거나 최소화돼야 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묻는다.

이에 반해 린 스타트업은 성공적인 실리콘밸리 창업회사들의 전형적인 경영방식이다. 전략은 큰 방향을 잡는 것이고, 완벽한 전략계획이란 효력이 없기 때문에 가설적인 전략을 가지고 빨리 실행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간다. 제품 개발 역시 완성품을 만들어 팔기보다는 시장의 변화가 감지되면 가능한 한 빨리 출시해 소비자 반응을 반영하면서 시장을 넓힌다. 조직은 정형화될 수 없고 상시적으로 프로젝트팀 형식으로 구성하고 해체한다. 실패는 흔한 일이고 배울 점이 있는 한 실패는 긍정적인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스타트업으로부터의 시사점에서 한걸음 나아가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린 경영방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의견이 속출하고 있는데, 전략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2014년 내부 연구보고서에서 린경영의 네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고객가치 중심 원칙이다. 린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름 아니라 고객이다. 고객가치와 관련이 없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고, 기업은 고객 입장에서 왜 구매 의사가 애초에 생기는가부터 구매가 이뤄진 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고객 경험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흥미롭게도 기업 내 구성원에 대한 것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이 고객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고객가치를 제고하는 더 나은 방식을 생각해낼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고객가치가 창출되는 동시에 구성원의 직무 만족도도 높아지는 선순환적인 조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결국 리더십과 자발적 조직문화가 핵심이다.

세 번째는 일하는 방식의 개선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일하는 방식이 정형화되기 마련이고, 한 번 형성된 방식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바뀌지 않는다. 린경영의 원칙 중 하나는 이제까지 일한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다는 믿음을 조직 전반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틀에 박힌 방식을 붙들고 있지 말고 언제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선방안을 치열하게 생각해내자는 것이다. 즉 막연히 생각하지 말고 깊이 있는 관찰과 구체적인 자료에 입각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끝으로 전략과 목표의 정합성이다. 조직이 지향하는 바를 재차 명확히 하고, 전략이 과연 그런 지향점과 잘 연계돼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마지막 원칙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표와 수단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원칙을 종합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뭔가 새로운 경영 용어가 주목받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혹자는 경영 개념의 등장과 퇴장을 패션사업에 비유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조류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린경영 역시 한때의 조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근본적인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린경영은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가치 있는 활동을 중심으로 군살을 빼는 단순화가 핵심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빠르고 유연할 수 있다.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 정도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조직 내부적 이유로 오랫동안 쌓여온 복잡성, 고객가치와는 관련이 없는 복잡성을 원칙을 가지고 과감히 제거해나가지 않으면 어떤 기업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

■ GE의 변신 이끈 '패스트 웍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거대 기업인 GE가 어떻게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는가였다. 삼성의 스피드 경영 등 다른 대기업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연구하던 GE의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풀어준 것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었다.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를 포함한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외부 전문가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벌여 ‘패스트 웍스(Fast Works)’라고 이름 붙인 GE식 속도경영 방식을 도입해 실행했다.

오랫동안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GE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데 익숙해 있고, 이런 방식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일종의 시제품을 만들어 출시한 이후 소비자 반응을 적극 반영해 제품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패스트 웍스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방법론의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조직문화 혁명이다. 린경영이 관심을 끄는 것은 GE 사례에서 보듯이 산업화시대에 성장해온 많은 대기업이 21세기 경영환경에서 어떻게 변신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김동재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