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에티오피아 노병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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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951년 22살 청년 멜레세
소대장으로 한국전 참전…200여회 전투서 대부분 승리
1953년 귀국 후 '군인의 길'
1974년 공산정권 들어선 후 온갖 핍박·천대 속에서 살아
어느새 85세가 된 노병
"64년 전 한국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었는데…
지금의 발전된 모습 보니 우리들 희생이 헛되지 않아"
아디스아바바=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
1951년 22살 청년 멜레세
소대장으로 한국전 참전…200여회 전투서 대부분 승리
1953년 귀국 후 '군인의 길'
1974년 공산정권 들어선 후 온갖 핍박·천대 속에서 살아
어느새 85세가 된 노병
"64년 전 한국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었는데…
지금의 발전된 모습 보니 우리들 희생이 헛되지 않아"
아디스아바바=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
6·25전쟁이 발발한 이듬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두 살의 청년 멜레세 테세매 씨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의 황실근위대에 입대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근위대에서 자원 병력을 모아 6·25전쟁에 파병할 1개 대대를 편성하고 ‘강뉴(Kangnew)’ 부대로 명명했다. 강뉴는 에티오피아 말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격파하다’라는 뜻. 멜레세 씨는 강뉴2대대 제4중대 제2소대장으로 임명됐다.
배를 타고 1개월여의 항해 끝에 1952년 3월29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를 기다린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그로부터 64년이 흐른 지난 27일. 85세의 노병은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제65주년 한국전 참전 기념식’에 참전용사회장으로 참석했다. 노병은 기자에게 “한국에 참전하러 가기까지 너무 먼 길이었다. 처음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기후가 맞지 않아 어려웠고, 두렵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52년 7월, 멜레세 소대장은 철의 삼각지 전투 등에서 중공군 포로 4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려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를 비롯한 강뉴 대대원들은 화천 철원 김화 등 최전방 산악지대에 배치돼 200회 이상의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하는 용맹스러운 전과를 올렸다. 참전 병력 3518명(연인원) 가운데 122명은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는 1953년 5월 귀국 후 황제 경호원을 거쳐 대대장으로 진급했다.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걸어 탱크여단장까지 올랐지만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모든 걸 잃었다. 그는 강제 퇴역당했다. 1974년부터 17년간 참전용사들은 공산 치하에서 온갖 핍박과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 멜레세 씨의 아들과 손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6·25전쟁 당시 우리보다 잘살던 에티오피아는 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19달러(IMF 추산)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에서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1996년 민관협의체 등을 구성해 지원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공무원 봉급의 우수리(1000원 미만) 모금 활동으로 매년 600명의 참전용사 후손에게 월 3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2012년부터는 생존 참전용사에게 월 5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2003년 아디스아바바에 명성기독병원을 열어 참전용사에게 진료비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LG그룹은 2014년 ‘희망직업학교’를 세워 참전용사 후손을 우선 선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의 혈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상외교 첫 순방국가로 에티오피아를 선택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여든이 넘은 참전용사들을 만나 악수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해준 나라”라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멜레세 씨는 “몇 해 전에 한국을 찾았을 때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고 너무 뿌듯했다”며 “무엇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값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
배를 타고 1개월여의 항해 끝에 1952년 3월29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를 기다린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그로부터 64년이 흐른 지난 27일. 85세의 노병은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서 열린 ‘제65주년 한국전 참전 기념식’에 참전용사회장으로 참석했다. 노병은 기자에게 “한국에 참전하러 가기까지 너무 먼 길이었다. 처음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기후가 맞지 않아 어려웠고, 두렵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52년 7월, 멜레세 소대장은 철의 삼각지 전투 등에서 중공군 포로 4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려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를 비롯한 강뉴 대대원들은 화천 철원 김화 등 최전방 산악지대에 배치돼 200회 이상의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하는 용맹스러운 전과를 올렸다. 참전 병력 3518명(연인원) 가운데 122명은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는 1953년 5월 귀국 후 황제 경호원을 거쳐 대대장으로 진급했다.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걸어 탱크여단장까지 올랐지만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모든 걸 잃었다. 그는 강제 퇴역당했다. 1974년부터 17년간 참전용사들은 공산 치하에서 온갖 핍박과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 멜레세 씨의 아들과 손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6·25전쟁 당시 우리보다 잘살던 에티오피아는 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19달러(IMF 추산)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에서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1996년 민관협의체 등을 구성해 지원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공무원 봉급의 우수리(1000원 미만) 모금 활동으로 매년 600명의 참전용사 후손에게 월 3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2012년부터는 생존 참전용사에게 월 5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2003년 아디스아바바에 명성기독병원을 열어 참전용사에게 진료비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LG그룹은 2014년 ‘희망직업학교’를 세워 참전용사 후손을 우선 선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의 혈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상외교 첫 순방국가로 에티오피아를 선택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여든이 넘은 참전용사들을 만나 악수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해준 나라”라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멜레세 씨는 “몇 해 전에 한국을 찾았을 때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고 너무 뿌듯했다”며 “무엇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값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