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코리아] 광유전학·식물 유전체…'블루스카이 연구'서 희망 찾는다
허원도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및사회성연구단 그룹리더(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살아 있는 신경세포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연구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연구자로 꼽힌다. 허 교수가 활용하는 광(光)유전학은 빛으로 세포 속 물질을 마음대로 조작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보는 기술이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살아 있는 세포의 기능을 훨씬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지난해 뇌 신경세포에 빛을 쪼여 기억력을 2배 향상시킨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이 같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최신 기술과 독창적 아이디어를 접목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허 교수는 “지금까지 규명된 세포 기능은 1~2%에 불과하다”며 “이 기술을 적용하면 뇌 연구와 암 치료에 획기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루스카이 연구에 주목

[스트롱코리아] 광유전학·식물 유전체…'블루스카이 연구'서 희망 찾는다
최근 세계 과학계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독창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블루스카이(blue sky)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블루스카이 연구는 분명한 목적이 없는 연구 또는 순수한 호기심과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연구다. 목적을 둔 연구를 너무 강조하면 과학의 우연한 발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힘이 실렸다.

백열등과 형광등을 대체할 LED(발광다이오드)산업을 일으킨 나카무라 슈지 UC샌타바버라 교수의 청색LED 연구도 처음에는 호기심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했다. 나카무라 교수는 청색LED를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정보기술(IT)산업을 일으킨 하드디스크 저장장치를 비롯해 그래핀, 줄기세포 기술도 과학자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영국왕립학회는 아이디어는 독창적이지만 연구비를 받기 힘든 연구를 위해 테오머피블루스카이상을 제정해 매년 과학자를 지원하고 있다. ‘투명망토’ 기술로 불리는 메타물질을 개발해 관심을 모은 울프 레온하트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교수도 2009년 이 상을 받았다.
[스트롱코리아] 광유전학·식물 유전체…'블루스카이 연구'서 희망 찾는다
국내에서도 IBS를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창의적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김상규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대표적인 블루스카이 연구자로 꼽힌다. 그는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양배추와 토마토, 콩, 유채 등 식물의 돌연변이를 연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가 사람과 동물에 주목하는 사이 김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에 주목했다. 김 연구위원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식물에서 사람에게만 유해한 성분을 없애거나 수백년간 재배되면서 사라져버린 유용한 영양분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무현 KAIST 화학과 교수는 다른 연구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메탄의 탄소와 수소 결합을 깨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를 활용하면 기후변화 요인으로 꼽히는 메탄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트롱코리아] 광유전학·식물 유전체…'블루스카이 연구'서 희망 찾는다
한국 찾는 외국 과학자 늘어

독창적 연구를 지원하는 연구 환경과 첨단 시설이 도입되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과학자도 조금씩 늘고 있다. 중국 출신인 리진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은 “최신 암흑물질 검출기인 킴스2호기를 활용해 가장 먼저 차세대 기술을 익히려고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블루스카이 연구를 진흥하려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는 젊은 연구자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IBS는 2021년까지 젊은 연구자 50명을 선정해 국내외 대학과 연구기관의 핵심인력으로 키우는 영사이언티스트 펠로십(YSF)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연구비를 받기 힘든 만 40세 이하 박사학위 소지자나 박사학위 취득 후 5년 이내 연구자에게 매년 1억5000만~3억원을 지원한다.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팀 헌트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20대 젊은 과학자들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고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블루스카이 연구

과학자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기초연구. 연구 결과를 실제 세계에 어떻게 적용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기초과학 영역의 연구를 말한다. 목적을 둔 연구만 강조하면 과학의 우연한 발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성찰에서 나왔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