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관선변호·포스트잇 선임계…법조계 '민낯' 드러낸 은어
“전에 있던 사무실은 ‘블랙’이었어. 급여는 쥐꼬리인데 일은 또 얼마나 시키는지…. 그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아서 이직했지.”

조모 변호사(31)가 친구를 만나 늘어놓은 푸념이다. ‘블랙’이란 고용 조건이 터무니없이 열악하거나 고용주에게 문제가 있는 사무실을 말하는 법조계 은어(隱語)다. 블랙리스트에서 유래했다. 은어는 특정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말을 일컫는다.

변호사 2만명 시대, 치열해진 법률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은어도 있다. ‘변호사 쇼핑’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마트에서 상품을 고르듯 수임료가 싸고 실력 있는 변호사를 고른다는 뜻이다.

변호사들은 ‘찍새’와 ‘딱새’로 일감을 분업화한다. 찍새는 사건을 물어오는 변호사, 딱새는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쓰고 잡무를 하는 변호사를 비유한다. 대체로 파트너(로펌의 주주격) 변호사는 찍새, 소속 변호사는 딱새를 맡는다. 구두닦이 용어에서 나왔다.

사건 당사자에게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몸을 많이 사리는 판사들은 은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벙커’는 일 처리가 깐깐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트집 잡아 배석판사들을 힘들게 하는 재판장을 의미한다. ‘깡치사건’은 품은 품대로 들고 빛은 나지 않는 사건을 말한다. 판사들은 대체로 여름 휴정기에 손에 골무를 끼고 깡치사건을 처리한다.

‘납품’은 주심 판사가 재판장에게 판결문을 완성해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은 너무 복잡해서 납품기일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어”처럼 쓰인다. 변호사들도 법원에 서면을 제출할 때 “납품한다”고 한다.

합의재판부의 경우 재판장을 중심으로 왼쪽을 ‘좌배석’, 오른쪽을 ‘우배석’ 판사라고 부른다. 휴가 중인 다른 부 판사를 대신해 재판에 들어가는 배석판사를 ‘몸배석’이라고 한다. 재판부는 1주일에 통상 1~2일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는데 이날을 ‘장날’이라고 표현한다.

검사들이 영어로 검사를 뜻하는 프로시큐터(prosecutor)에서 프로만 따 서로를 김 프로, 이 프로처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려진 편이다. 최근엔 판사, 변호사들도 프로란 말을 자주 쓴다. 검사들은 사석에서 검찰을 지칭할 때 ‘회사’라고 한다. 검찰 소속인 것이 알려지는 게 껄끄러워서다.

‘금초’는 갓 검사로 임용된 초임 검사다. 상사인 부장검사는 의욕만 넘치고 경험이 부족한 금초에게 민감한 사건은 맡기지 않는다. 2학년 검사는 부임지를 한 번 바꾼 검사를 말한다. 부임지가 두 번 바뀌면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식이다.

그릇된 법조 관행을 비유하는 은어도 있다. 다른 판사에게 청탁하는 판사를 일컫는 ‘관선변호’,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제출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메모를 붙이는 ‘포스트잇 선임계’ 등이 대표적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