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각 개인의 체질적 특성 정보를 기억하는 세포 단위다. 19세기부터 연구가 시작됐지만 방대한 유전자의 특성 때문에 인간이 풀기 어려운 ‘신의 영역’ 정도로 인식됐었다. 그러다 1990년부터 15년간 30억달러가 투입된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유전자 분석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에는 일루미나라는 회사가 신형 유전자 분석기를 개발하면서 ‘1000달러 게놈 시대’가 열렸다. 스티브 잡스가 2011년 췌장암 치료 중 유전자 분석에만 쓴 돈이 10만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누구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분석해볼 수 있는 대중화 시대의 개막이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이오기업도 속속 등장했다. 미국 바이오기업 23앤드미는 분석키트에 자신의 침을 받아 보내면 질병부터 약물 반응, 알코올 민감도, 체중 등 다양한 유전 정보를 분석해준다. 서비스 가격은 99~199달러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라쿠텐 등 온라인몰에서 피부, 비만 등 유전자 검사 키트를 구입할 수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졸리처럼 자신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미리 알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보험도 선택적으로 들 수 있다. 물론 신생아 유전자를 검사해 선별적으로 출산하게 되는 등 생명 경시 우려도 분명히 있다. 나치 등의 ‘인종청소’에 빌미를 제공한 우생학의 망령을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방의학과 맞춤치료가 더 향상될 수 있다면 사회적 후생은 분명히 높아질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병원에서만 할 수 있던 유전자 검사가 쉬워진다는 소식이다.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전문가 태스크포스가 민간기업 유전자 검사 서비스 허용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검사 허용 범위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비타민C 대사 관련 등에 제한되고 암이나 희귀 유전질환과 관련한 유전자 검사는 할 수 없다니 아직은 초기 단계다. 미국 영국 중국 등이 유전자 분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걸 보면 만시지탄이다. 악명 높은 의료 관련 규제가 하나라도 깨지는 사례가 나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