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늘리는 최선의 방책은 경제활성화
기업소득환류세제, 투자 효과는 없고 배당만 늘려
기업 투자 이끄는 세제로 성장동력 확보해야
이에 맞서 여당은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운 때 세금을 올리자는 것은 자충수이고 자살골”이라며 반대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26일 중앙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법인세 인상은 국민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증세를 비롯 세제분야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이 교수는 매년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사전에 심의하고 자문해주는 역할을 하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올해까지 23년 연속 참여한 국내 최고 ‘세제 전문가’다. 올해는 중장기조세정책심의위원회 공동위원장까지 맡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세 차례 세법이 개정됐습니다. 어떻게 평가합니까.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난해 ‘연말정산 파동’ 이후 정부의 성급한 대책이었습니다. 애초 세제개편안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은 전체 조세정책 방향에서는 맞았어요. 하지만 이로 인해 세 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이 생겼고, 이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걸 만회하겠다고 세액공제 폭을 확대하는 식으로 세금을 돌려줬죠. 전체 근로소득자 1500만여명 가운데 세금을 하나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31%에서 48%까지 뛰었습니다. 수십년간 해온 세제개혁이 잘못된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뒷걸음질친 것이죠.”
▷면세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0% 안팎)의 두 배 이상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납세의식도 낮아지고 재정에 대한 주인의식과 책임감도 떨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세제는 없습니다. 정부가 욕먹을 각오하고 세제를 바로잡아야 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금을 올리는 데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직접적인 증세보다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대표적인 것이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소득공제입니다.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카드회사가 현금 매출 자료를 국세청에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면 그만큼 매출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게 없어도 국세청이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를 수정해 세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물론 세수를 증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 활성화를 통해 국민 소득을 늘리는 것입니다.”
증세보다 비과세·감면 축소 우선
▷총선에서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법인세율 인상이 올해 세법개정안의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일본 영국 등 법인세율을 낮추는 나라가 많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을 유치하고 고용을 늘리려는 이유입니다. 우리만 법인세율을 올리면 예외적 국가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인세율을 높여 외국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한국 기업도 해외로 떠난다면 일자리는 더 줄어듭니다. 법인세와 고용은 서로 대체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법인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쪽에선 한국의 실효세율이 낮다는 이유를 듭니다.
“일종의 ‘통계의 오류’입니다. 실효세율이 낮은 것은 투자세액공제 같은 비과세·감면제도 때문인데 이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는 일부 ‘잘나가는 대기업’뿐입니다. 이익을 많이 못 내는 기업은 공제도 받지 못합니다.”
▷현 정부가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나 임금 인상, 배당 등에 사용하지 않으면 세금을 물리는 제도인데, 애초 취지는 기업이 투자를 늘려 일자리도 많아지게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시장에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반응했습니다. 투자는 시장 상황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임금은 한 번 올리면 다시 깎지 못하니 배당만 잔뜩 늘린 것이죠. 일부 비상장회사 대주주는 배당도 챙기고 세금도 감면받는 식으로 제도를 악용했습니다. 선의(善意)와 달리 부작용만 키운 셈이죠. 대표적으로 잘못된 조세정책입니다. 지금이라도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배당에 대한 혜택은 없애야 합니다.”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증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습니다.
“증세보다는 비과세·감면부터 줄이는 게 맞습니다. 투자세액공제가 대표적입니다. 학계에선 투자세액공제가 투자를 촉진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가 많이 나옵니다. 투자가 필요해서 한 것이지 세액공제 때문에 투자한 건 아니라는 것이죠. 부가가치세 면세 품목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같은 값에 팔리는 흰우유와 딸기우유의 경우 흰우유는 미가공식품이어서 면세되고 딸기우유는 가공식품이란 이유로 세금이 부과됩니다. 모호하고 황당한 것이 부지기수죠. 종교법인 영리사업의 과세 정상화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식의 조정을 통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가업상속공제, 증여로 확대해야
▷일부에선 40년 가까이 한 번도 손댄 적이 없는 부가가치세(세율 10%)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일본은 소비세 인상으로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했습니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통일 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장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본다면 일부 면세 품목에 10%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상속 및 증여세법을 완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상속 및 증여세법은 국민 여론상 건드리는 것이 쉽지 않아요. 재산을 가진 사람 입장에선 최대 세율이 50%나 되니 증여를 안 하고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상속세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 사는 거라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돈을 갖고 있으니 투자 활성화가 안 됩니다. 재산을 증여받아 투자에 사용한다면 세율을 깎아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부의 이전도 빨라지고 받은 사람 입장에선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요. 지금도 일정 기간 고용과 경영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는데 이걸 증여로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장기조세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도 맡았습니다.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합니까.
“한국 사회는 출산율이 낮아지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조세부담률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세금이 늘어나면 성장동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성장동력을 훼손하지 않고 어떻게 세제를 운영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지금은 기업 창업 단계에선 아무 세금 지원이 없는 데 비해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깎아주는 식입니다. 이익을 낸다는 것은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뜻인데 굳이 깎아줄 필요가 없죠. 이걸 반대로 창업 단계에서 지원하고 나중에 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요. 구조조정도 참여한 기업에 현실적으로 이득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는 등 투자로 끌고 갈 수 있는 세제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기업을 성장으로 이끄는 체계를 확립해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 이만우 교수는 …
국내 최장수(23년)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1994년 강만수 세제실장(전 기획재정부 장관) 때 세제발전심의위원을 맡은 이후 20여명의 세제실장이 그를 거쳐갔다. 이 교수는 “역대 세제실장 중 윤증현 전 장관, 남궁훈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박재완 전 장관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진표 전 부총리에 대해선 “세제실장 시절 조세체계 간소화, 목적세 폐지 등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정치인이 된 뒤에는 증세를 주장하는 등 달라졌다”며 “20대 국회에 다시 들어가는 만큼 ‘김진표 세제실장’의 마음으로 돌아가 조세제도 합리화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회계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대리시험으로 적발된 학생에게 운동장 10바퀴 돌기와 강의실 책·걸상 닦기를 시키는 등 엄격한 학사 관리로 ‘존경스러운 괴짜 교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54년 강원 동해시 출생 △묵호고,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박사 △한국·미국 공인회계사 △한국회계학회·세무학회장 △국세행정개혁위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세제발전심의위원 △중장기 조세정책심의위원장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