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독일 시민들의 성숙한 과거 반성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서남쪽 260㎞에 있는 인구 10만명의 작은 도시 예나.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실러, 철학자 헤겔 등이 대학 교수로 활동해 온 전형적인 대학 타운인 이곳에서 지난 20일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127번째 생일을 맞아 35명의 신(新)나치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들은 히틀러가 이끈 독일 제3제국을 찬양하며 “이민자 추방” 등 과격한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을 에워싼 3000여명의 반대 시위대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알브레흐트 슈뢰터 예나시장을 포함한 시민들은 과거사 반성과 통합을 강조했다. 드레스덴 등 인근에서 신나치주의자들의 시위가 있을 때마다 버스를 동원해 시민들과 함께 반대 시위에 참여해 온 슈뢰터 시장은 “(과거사 반성은) 독일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독일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를 강조해 왔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끔찍한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베를린에 많은 상징물을 조성했다.

2001년 유대인 박물관을 새롭게 개관한 데 이어 2005년에는 시내 중심가에 2000여개의 기둥으로 표현한 홀로코스트(대학살) 기념비도 세웠다.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라는 정부 기구를 세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와 강제 노역한 폴란드·체코 주민 등 약 800만명에 대한 보상도 꾸준히 하고 있다.

수도 한복판에 유대인을 위한 추모 공간을 조성하고, 시장 등 정치인들이 나서서 반성과 속죄를 강조하는 독일의 모습은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일본과 너무나 대조를 보인다. 지난 23일 이와키 미쓰히데 일본 법무상은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 전날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이 참배했고 아베 신조 총리는 공물을 보냈다.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죄로 사형당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곳이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일본인들은 과거사 인식에 대한 세계적 비판에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정태웅 기자 예나(독일)/정치부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