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갑질'에 대리운전 업체 '때 아닌 호황'
“네, 부사장님. OO골프장이요? 내일 오전 6시까지 댁 앞으로 가겠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영업하는 일반 대리운전 업체에서 일하던 대리운전 기사 박모씨(55)는 지난달 법인 대리운전 회사로 자리를 옮긴 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쏟아지는 ‘콜’ 때문에 바빠졌다. 박씨에게 ‘콜’ 하는 단골손님은 주로 기업 임원들이다.

고정 운전기사를 없애는 대신 사전에 업체와 계약을 맺고 대리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인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 오너와 임원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폭행과 욕설, 무리한 요구 등 ‘갑(甲)질’ 행태 사례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다.

김만식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등 갑질을 했다가 지난 18일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은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함께 지나친 매뉴얼(업무지침)을 지키도록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으로, 유재진 스타자동차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시속 200㎞ 이상의 과속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300명의 기사를 둔 법인 대리운전 업체 유진파트너스는 올 들어 지난 22일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었다.

1000여명의 대리운전 기사를 둔 국내 최대 법인 대리운전 업체 H사는 다른 업체 기사까지 끌어오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업체 소속 대리운전 기사 김모씨(58)는 “예전엔 한 달에 150만원도 손에 쥐기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기업 임원의 출퇴근이나 골프장 대리운전 수요가 많아 최소 200만원은 벌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주말에 경기도에 있는 골프장에 대리운전을 한 번 다녀오면 12만~15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기업들이 법인 대리운전을 애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업체 관계자는 “고정 운전기사를 쓰면 한 달에 4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지만 대리업체를 통해 기사를 부르면 15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기업 수요가 늘자 법인 대리운전 업체들도 ‘기업 손님’ 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손님들에게 ‘간택’ 받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에게 예절 교육은 물론 외국어 공부까지 시킨다. 유진파트너스의 박병석 대표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기사에게 정장을 입도록 하고 차 안에서 들은 얘기는 절대 발설하지 않도록 보안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인 대리운전이 각광받다 보니 최근에는 20대 청년들도 기사로 일하겠다며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