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치가 말하는 구조조정
경제 성장도, 산업 발전도 미분을 하면 결국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연속이다.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어느 나라의 무역 및 산업구조가 변화에 더 유연하게 적응하는지에 주목한 이유다. 이른바 ‘변환능력(capacity to transform)’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에 발탁된 로버트 라이시와 클린턴 정권 인수팀의 경제담당 보좌역 아이라 매가지너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 사회가 위기 산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번영에서 큰 차이가 난다. 금리를 몇 %로 하고 통화 공급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이후 미국은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했다.

“성장은 구조조정의 연속”

폐쇄적 경제가 아닌 이상 어느 국가도 동태적 국제 분업체제를 피할 수 없다. 한 국가의 비교우위 산업이 끊임없이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신산업으로 이동하든, 산업 내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이동하든 어떻게 하면 생산요소의 이동성을 높이고,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것이냐의 과제만 남을 뿐이다.

문제는 구조조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과업이라는 점이다. 달콤한 정치적 논리가 똬리를 틀기에 더없이 좋다. 국가에 따라 구조조정이 ‘혁신적’이기는커녕 ‘방어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로 그래서다. 노조의 반발이 강한 분야, 지역적 집중도가 높은 분야, 국민기업 운운하는 분야, 해운 조선 등 주기적 특성을 가진 분야일수록 더 그렇다. 어차피 도산할 기업을 지원하느라 세금을 퍼붓는 국가와 그 유혹을 떨쳐 내는 국가의 운명이 여기서 갈린다. 하지만 정치는 역사적 학습을 망각하기 일쑤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본질적·근본적 구조조정론’을 들고나왔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촉진하자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을 ‘대기업 특혜법’이라며 물고 늘어진 건 야당이다. 대기업은 앉아서 죽으라는 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원샷법’은 만신창이가 됐다. 야당은 지금도 노동개혁, 금융개혁을 반대한다. 노동시장, 자본시장은 생산요소의 이동성을 결정한다. 이를 틀어막으면 무슨 수로 구조조정을 하겠나. ‘총론 찬성, 각론 반대’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정치적 반사이익이나 얻자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판치는 건 정치적 계산뿐

여당은 더 웃긴다. 총선 때 여당 대표는 “내가 구조조정을 막겠다”고 했다. 구조조정을 무력화시킬 게 뻔한 ‘한국판 양적 완화’ 운운한 것도 여당이다. 여당이 이러니 정부도 오락가락이다. 총선 전엔 미적거리다 이제 와서 구조조정을 놓고 갑론을박이다. 기획재정부는 속도가 늦다고 다그치고, 금융위원회는 자율 구조조정을 말하고, 담당 부처는 눈만 깜박거린다. 구조조정 총대를 멜 듯이 나오지만 언제 경기 부양 카드로 돌아설지 모르는 기재부, 온갖 간섭은 다 하면서 자율 운운하는 금융위, 기업들에 볼모로 잡힌 듯한 담당 부처. 하나같이 위선적이다.

벌써 시작된 대선 레이스는 구조조정의 적신호다. 대선에서 경제심판론을 노리는 야당, 그걸 피해 가려는 여당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말뫼의 눈물’이 아니라 ‘한강의 눈물’이 회자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 교과서에서 가장 조심하라는 ‘정치의 함정’에 직면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