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알리안츠생명 매각이 주는 교훈
세계 1위 보험그룹인 알리안츠는 한국 보험업계에 고마운 존재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국내 보험사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을 때 자발적으로 투자한 첫 외국 자본이었다. 당시 국내 4위 생명보험사인 제일생명을 인수해 지금까지 1조3000억원 이상을 자본 확충 등에 쏟아부었다. 그동안 배당금으로 약 1600억원을 가져갔다. 연간으로 따지면 100억원이 안 된다. 간혹 매각설이 돌 때마다 알리안츠 쪽에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투자를 많이 했는데 한국에서 철수하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도 임직원 1167명과 설계사 3344명이 알리안츠 소속으로 생활하고 있다.

17년만에 철수하는 알리안츠

그러나 역(逆)으로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알리안츠에 한국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다시는 돌아보기 싫은 곳일지도 모른다. 채권을 팔아 64억원의 이익을 낸 2014년을 제외하면 2012년부터 작년까지 적자 연속이었다. 지난해엔 874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냈다. 알리안츠는 결국 한국법인을 3000억원 안팎에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하고, 17년 만에 철수하기로 했다.

알리안츠의 한국 진출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실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한국 진출 초기 외국인 경영진의 판단 착오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를 인수하면 인력과 조직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구조조정하는 게 필수다. 그러나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잇따라 경영을 맡은 세 명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는 그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구조조정도 없었고,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는 노력도 소홀했지요. 제일생명 시절의 좋지 않은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느슨하게 경영을 했어요.”(전 알리안츠생명 임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얘기다.

안방보험이 성공 스토리 쓰려면

강성 노동조합도 알리안츠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알리안츠는 외국인 경영진을 대신해 2007년부터 한국인을 잇따라 CEO로 기용하며 과거의 적폐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회사가 내놓은 제안들은 노조 반대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노조가 성과급제 도입에 반발해 2008년 초부터 234일간 진행한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노조는 조합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전국 각지의 콘도, 리조트 등을 돌며 파업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월 통상임금의 최대 3개월치를 매년 쌓아주는 퇴직금 누진제 역시 회사엔 큰 부담이었다. 경영진은 지속적으로 노조의 양보와 협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2013년 514억원의 적자를 본 뒤에야 퇴직금 누진제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퇴직금 누진제 덕분에 2013년 말 실시한 희망퇴직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은 수억원씩 받아 가기도 했다.

초기 경영진의 안일함과 강성 노조의 비협조가 불러온 알리안츠 실패는 곧 새 주인이 될 안방보험과 남은 임직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방보험으로선 알리안츠생명을 인수해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급선무다. 노조도 강성 일변도에서 벗어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방보험이 한국 보험시장에서 실패가 아닌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다.

류시훈 금융부 차장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