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억6750만원…김환기 작품, 홍콩서 국내 미술품 최고가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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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추상화 작품이 국내 미술품 경매 역사를 새로 썼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4일 홍콩 르네상스 하버뷰호텔 8층에서 연 경매에서 김 화백의 1970년작 점화 ‘무제’(사진)가 3300만홍콩달러(약 48억6750만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이 작품은 작년 10월 3100만홍콩달러(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된 김 화백의 1971년작 점화 ‘19-Ⅶ-71 #209’(253×202㎝)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최고가 작품은 2007년 5월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였지만 그 사이 김 화백 작품이 두 번이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크기가 다른 작품이지만 6개월 만에 1억4650만원 더 비싸졌다.
서울옥션 측은 “2000만홍콩달러(약 29억5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한국인을 포함해 현장에서 7~8명의 응찰이 이어지다가 3000만홍콩달러를 넘어서자 유럽 컬렉터가 전화로 응찰하는 등 경합이 벌어졌다”며 “총 15회에 가까운 경합이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지난해 10월 경매 최고가를 넘어섰고 결국 현장 응찰자에게 낙찰됐다”고 전했다. 낙찰자는 홍콩인 남성 컬렉터로 알려졌다.
황금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김 화백이 미국 뉴욕 거주 시절 제작한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제작 연도, 패턴, 사이즈 등이 거의 비슷하다. 김 화백은 뉴욕 거주 시절에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줬다. 1950년대까지 그의 예술이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산, 달, 새 등 한국 고유 서정의 세계를 구현했다면 1960년대부터 시작된 뉴욕 거주 시절 작품은 점, 선, 면의 조형 요소로 발전돼 본격적인 추상 작업이 심화됐다. 김 화백의 작품이 잇따라 최고가를 경신한 것은 작가 특유의 조형성이 컬렉터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단색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면서 김 화백이 단색화의 ‘시원’격으로 알려진 것 같다”며 “김 화백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4일 홍콩 르네상스 하버뷰호텔 8층에서 연 경매에서 김 화백의 1970년작 점화 ‘무제’(사진)가 3300만홍콩달러(약 48억6750만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이 작품은 작년 10월 3100만홍콩달러(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된 김 화백의 1971년작 점화 ‘19-Ⅶ-71 #209’(253×202㎝)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최고가 작품은 2007년 5월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였지만 그 사이 김 화백 작품이 두 번이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크기가 다른 작품이지만 6개월 만에 1억4650만원 더 비싸졌다.
서울옥션 측은 “2000만홍콩달러(약 29억5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한국인을 포함해 현장에서 7~8명의 응찰이 이어지다가 3000만홍콩달러를 넘어서자 유럽 컬렉터가 전화로 응찰하는 등 경합이 벌어졌다”며 “총 15회에 가까운 경합이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지난해 10월 경매 최고가를 넘어섰고 결국 현장 응찰자에게 낙찰됐다”고 전했다. 낙찰자는 홍콩인 남성 컬렉터로 알려졌다.
황금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김 화백이 미국 뉴욕 거주 시절 제작한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제작 연도, 패턴, 사이즈 등이 거의 비슷하다. 김 화백은 뉴욕 거주 시절에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줬다. 1950년대까지 그의 예술이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산, 달, 새 등 한국 고유 서정의 세계를 구현했다면 1960년대부터 시작된 뉴욕 거주 시절 작품은 점, 선, 면의 조형 요소로 발전돼 본격적인 추상 작업이 심화됐다. 김 화백의 작품이 잇따라 최고가를 경신한 것은 작가 특유의 조형성이 컬렉터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단색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면서 김 화백이 단색화의 ‘시원’격으로 알려진 것 같다”며 “김 화백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